주부의 바람난 투자
50 평생 첫 낭비 계획을 실행하다: 한 번만이라도 셀럽처럼 살아보라
책 한 권 달랑 읽고 저자가 권유하는 대로 낭비를 실천하고자 결심을 했지만 선뜻 한걸음 내딛기가 쉽지 않았다.
오십여 년을 아끼며 절약해 온 습관이 있어 망설여진다.
몇 번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연필 한 자루를 사더라도 돌다리 두드리듯이 한 번 더 고민하는 내가 천만 원이 넘는 거액을 쓰자니 얼마나 고심이 컸겠는가.
남편은 12시간 30분을 가는데 1인 600만 원이면 좀 아깝다고 말했다. 비행기 좌석값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눈 것이다.
일반석의 4 배값이다.
물론 나도 아깝다. 좌석 비용 이외에도 현지 조인비를 별도로 계산하면 2,000만 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좀 아까울 금액을 가치 없는 것에 써보라는 책 내용이 떠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생각에 잠겨 있다가 늦은 밤이 올 무렵 압박감에 이코노미석으로 가자고 남편에게 말했다.
말하고 난 후 여행비용을 계산하던 중 근심스럽고 답답하여 활기가 없어져갔다. 일반석을 선택했지만 1,000만 원이 필요했다. 적지 않은 비용 때문에 한 숨만 자꾸 나왔다.
또 비좁은 일반석에 앉아 몸을 구긴 채로 잠도 못 잘 것이고 기내 도시락은 소화불량으로 삼키기 어려울 것을 연상하니 여행이 즐겁지 않았다. 이런 마음으로 여행을 가야 하나?
차라리 국내여행이 더 행복할 듯했다.
왠지 내가 가난뱅이처럼 느껴져 기를 펴지 못했다.
어쩌면 남들은 배부른 소리 한다고 말하겠지만, 비싸게 느껴지는 여행비와 내가 행복하지 않은 여행을 진행하자니 가벼운 슬픔이 마음에 자리 잡았다.
남편은 대신 아낀 돈으로 올 겨울 하와이나 괌, 또는 내년 여름에 북유럽을 데려가겠다고 제안했지만 설렘이 없었다.
결국 도돌이표 인생을 사는 셈이었으니까. 달라진 것이 없으니까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남편은 풀 죽어 있는 나를 알아차렸는지 프레스티지석으로 가자고 다시 제안을 했다.
"정말?"
응원받는 기분이었다. 미안한 생각도 들어 돌아올 때가 가장 피곤하니까 1회만 업그레이드하자고 말하자 이왕 결정한 것이니 왕복으로 다녀오자고 한다.
고마웠다. 남편이 기꺼이 결정을 내려주니 공감받는 느낌이 들었고, 나의 낭비 계획에 동참을 한 셈이니까 헤프게 쓰는 세계를 같이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여행사에 방문하여 예약을 하고 나오는 순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해방감을 맛봤다.
저자는 이런 의미에서 한 번만이라도 셀럽처럼 살아보라 제안한 것일까?
1,000만 원이 비싸다고 궁상을 떨던 내가 2배 값을 썼는데도 부담에서 벗어난 느낌을 받다니 이상하고 신기하다.
은퇴, 은퇴 노래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다시 열심히 돈을 벌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열등감이 자신감으로 바뀌더니, 스스로 가난뱅이라 여겨지던 마음도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 은근히 기쁘게 돈을 쓴 만큼 투자한 돈도 나에게 다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분명 온통 부정적인 마음이었는데 긍정적인 마음으로 변해갔다.
푼 돈만 셈하던 한계를 벗어나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다.
큰돈을 지출하면 소심해져서 쓴 만큼 악착같이 모으려 동전 한 닢까지 아끼려들 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대범하게 돈을 다루고 돈을 좇지 않는 넉넉한 마음이 온 것이다.
'아깝다고 느껴지는 돈을 써 보면 더 효과적이다.'라는 글이 생각난다.
나에게 그 효과가 제대로 왔다.
여행, 시작도 안 했지만 돈을 모시고 사는 노예였다가 자유인과 주인이 된 기분이다.
앞으로 국제여행 중 또 어떤 감정들이 올지 기대하면서 소중한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 글로 남길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지름신 놀이를 해본 결과, 내가 행복하도록 생애를 만들어가는 것이 돈보다 우선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래야 내가 돈 위에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