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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나무 Sep 02. 2022

네 마음에 닿고 싶어

2022.9.2(금)

병휴직을 마치고 복귀 11일째다.

14살 아이들과 9일 보내고, 15살 아이들과 2일 보냈다.


같은 초졸인데, 1년 터울 아이들은 큰 차이가 있었다.

8.19. 14년 차 아이들은 담임이 바뀌었는데도 첫날부터 호감을 보이더니 잘 따라줬다. 동그랗고 귀여운 얼굴로 정면으로 바라보며 웃는다. 호의를 갖고 대해주니 편안했다.

교실도 깨끗하고, 손이 많이 안 갔다.


9.1. 짐을 싸 15년 차 아이들이 사는 곳으로 이사했다.

이들은 곁눈으로 슬쩍슬쩍 본다. 호기심을 보이면서 거리를 두고 말을 걸어왔다. 교실은 더러웠고, 너무 활발해 시끄러웠다. 전 담임이 그리운지 곁을 내주지 않으면서 칠판에 낙서 비슷한 급훈이 지워졌다며 큰소리로 따지듯 했다. 내가 지운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이다. 청소당번 없이 지낸 터라 종례 후 청소를 하자니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뜬금없지만 재혼가족인 경우 자녀가 어릴수록 적응기간이 짧겠구나 느꼈다. 15년 지기들은 이미 대뇌 발달이 14년 지기보다 월등하여 충성심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새엄마나 새아빠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그만큼 오래 걸린다는 뜻이다. 물론 새담임도.


나는 느꼈다. 내가 이들과 겉돌고 있다는 것을.

내 마음이 그들 속에 닿지 않았다는 것을.


먹구름이 잔뜩 낀 머릿속은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설악산 흔들바위가 있는 듯 왔다 갔다 무겁게 오고 갔다.


첫날부터 오전 10시에 느긋한 얼굴로 자신 있게 지각했다고 말하는 아이.


오자마자 배드민턴 운동부라 허리 통증으로 병원 간다고 급식 먹을 때쯤  오겠다고 외출증 받으러 오는 아이.


생리통으로 지각하겠다는 아이.


4명이 떼를 지어 타반에 들어가 벌점을 받아오는 아이들은 정말이지 미운 15살이었다.


4명을 따로 불러 혼쭐 낼까? 아니면 알려줄까?

고민 고민하다 후자를 선택했다.


"자네들. 민원 들어왔어요. 해명을 듣고 싶습니다."


ㅌㅇ이가 먼저 말했다. " 그게요, 점심때 들어갔어요 "

이어서 줄줄이 "우리 둘은 그냥 앞에 서 있었어요" , "다른 애들도 우리 반에 들어와요".


"학생부 선생님이 왜 벌점을 주셨으며, 사유를 무단침입이라고 표현하셨을까요?"


ㅁㅈ이가 말한다 " 음, 그건 물건을 훔쳐가거나 뭐가 없어질까 봐서요."


" 아니야, 잘 못 생각한 겁니다. 자네 말대로라면 자네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본 것이지요. 다시 생각해보세요."


"음,  그럼  코로나 걸릴까 봐 접촉을 못하게 하시려고요."


"맞아, 그리고 자네들은 배워야 해. 타반에 들어가려면 초대를 받아야 합니다. 교실에 있는 아이들과 담임선생님  모두에게. 자네들이 초대 없이 들어가서 무단침입이라고 표현하신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자, 그럼. 차렷. 공수. 시작"


4명이 합창으로 " 나는 담임선생님께 사랑받는 0학년 0반입니다. 앞으로 초대받고 들어가겠습니다."


지도를 받고 교실로 돌아갔다.


코로나 때문에 쉬는 시간이 10분에서 5분으로 , 점심시간이 1시간에서 50분으로 줄어 지도할 시간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어려움이 많다.


또 어제는 억지로 5명이 5분간 청소하는 모습을 본 후, 무거운 마음으로 하교시켰다. 나는 남아서 추가 청소를 시작했으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늘 종례시간에 아이들이 밝은 얼굴로 자랑을 한다.

" 우리 칭찬받았어요. 교실이 깨끗해졌다고요. "

어제와 달리 청소를 기분 좋게 꼼꼼하게 하는 아이들을 지켜봤다. 관찰하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에 촛불이 있는 듯 밝아지며 따뜻해졌다.

자유로운 영혼인 ㅌㅇ이가 정성껏 청소하는 모습이 예뻐서 그려봤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이 생뚱맞게 말한다.

" 저 고양이 때문에 수업시간에 뒤통수가 따가워요"

" 고양이 그림 너무 귀여워요. 기분 좋아져요"


" 자네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위안받으라고 직접 그린 겁니다."


빼꼼고양이 유화그리기로 완성


"우아, 정말요?"


서로 오고 가는 몇 마디였지만 나는 느꼈다.


내 진심이 아이들 마음속에 느리게 닿고 있음을.

오늘은 기분이 너무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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