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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나무 Aug 27. 2022

나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6개월 병휴직을 마치고 직했다.

전장과 같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신입사원처럼 활하던 중 인후통+근육통+ 발열에 오한까지  더해져 몸이 녹아내리는 듯 바닥에 물처럼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며칠째 이런 증상이 있어 일찍 출근 머리를 젖히고 눈을 감아 워밍업 시간을 갖었다. 길게는 못하고 5분 만에 일을 시작했고,  목이 따갑고 부었기에 말하는 것이 통스러웠다.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라 목이 자주 아픈데, 이럴 때면 남편이 끓여주는 특별한 물을 신다.


대추+영지버섯+생강+홍삼뿌리를 넣어 끓인 물이다.


그리고 출근할 때마다 먹는 콩물은 삶은 서리태+우유+바나나+깨+땅콩+아몬드+피스타치오+캐슈너트 등 견과류인데 종류가 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이 물을 보온병에 넣고, 콩물을 급히 마시고, 출근을 서두르다 고맙다는 말을 잊고 다녔다. 어쩌면 목이  아프니  말을 아낀 것도 있다. 말을 하기 싫었다. 직장에서 엄청나게 말을 많이 해야 하므로 생략했다.


퇴근하면서는 목젖이 부었나 편도가 부었나 전체가 띵띵한 느낌이 들었다. 폴라폴리스를  시시때때로 목구멍 안으로 뿌렸고 홍삼물을 마셨는데도 증상은 더해졌고 운전대를 잡고 앉았는데  척추가 흐물거려 고만 싶었다.


간신히 집에 도착하니 남편이 어제 말한 우럭탕과 박대 구이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기운을 자동차 운행으로 다 써버려 맛있게 만든 정성스러운 상차림을 보고도 거실 소파에 누워버렸다. 고맙다는 말을 또 생략한 채로.


밥 먹자는 말에 안 열리는 목구멍을 열기 위해 턱을 들어 편도와 목젖이 혀뿌리에 닿지 않게 애쓰며 나중에 먹으면 안 될까? 말했다.


남편 얼굴은 분화구로 바뀌더니 폭발하듯이 말했다.

"자기 멋대로 행동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자신만 생각한다"쌓였던 것을  토해냈다.

그러곤 밖을 향해 차가운 공기만 남긴 채 사라졌다...



"이기적인  사람은  나눌 줄  모르고, 자신만 생각하며, 항상 자신을  우선시한다."


남편이 했던 말과 같아서 위 문장에 시선이 오래도록 닿았다. 오늘 어떤 이가 블로그에 올린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법'이란 글이다.


강조하는 점은 타인을  위해 항상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며 나를 존중하자는 제안을 포함하여  관대함이기심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내용이다.


잠잠히 생각하니  '희생'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희생은 본래 제사에서 산 제물로 바치는 것을  뜻하는데, 국립국어원이 낱말의 뜻을 원래와 완전히 다르게 바꿔 죽음과 동의어로 착각해 목숨을  잃는 것으로 풀었다고 한다.


신에게 살아 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친 사례는  있다. 파바로티처럼 늙은 나이에 아브라함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이삭을  자신의 칼로 목을 벨 찰나  여호와께서 급히 멈추라 하고, 대신 양을 잡아 제를  올린 야기다.


파바로티의 만토바니는 젊은 몸이었으나 아브라함의 사라 월경이 끊어져 아이를 못 낳는 몸이라 포기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태중에 들어선 귀한 아들을 죽여야 했으니 그 아비와 어미 마음이 오죽했을까.


이  외멜 깁슨이 감독한 아포칼립토 영화에서 산 채로 제물을 올리는 장면을 실감 나게 시청했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인정한다. 남편의  말이 맞다.


편이나 타인 등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없는 나. 


어린 나는 보자기에 싸여, 동네 사람이 귀여워하며 얼굴을  만질라 하면 고개를 돌려버리기 일쑤여서 쌀쌀맞은 아기라 불렸다고 한다.


자라면서는 친구 생일을 잊어버려 절교당할 뻔한 일도 있었고, 고시생 시절에는 연락을 받지 않아 결국 요즘 유행어로 손절당했다. 친동생도 연락을 안 한다고 불만을 토로다.


그러던 아이가 결혼을 했다. 혼자 살아가리라 생각하며 부모에게 독신을 선언하고 나서 말이다.


결혼 생활은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곤 하는데, 난 헌신도 익숙하지 않다.


타인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합쳐 있는 힘을 다하지 못하는 나.


불우이웃 돕기나 기부금은 내도 정성을 다해 타인을 손수 돌보는 행동은 못 하는 나.


어쩌면 나는 결혼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남편은 이런 이기적인 사람을 선택한 대가로 참고 지내다 오늘 쏟아낸 것이다.


초파리가 파리보다 더럽다며 믿기지는 않지만 하루에 500마리나 잡느라 고생한 얘기를 시작으로,  나중에 먹겠다는 나의 말을 같이 안 먹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며 끝맺음했다.


일상에서 자주 나중에 먹겠다고 말하는 경우, 남편은 혼자 먹었기에 이번에도 단정 지어 생각했나 보다.


나는 잠시 쉬고 같이 먹자는 뜻이었다. 차라리 기다려 달라 말하는 게 좋았을 싶다.


남편은 앞으로 먹여달라고 말하라고 한다. 그러면 오해하지 않을 수 있다고.


남편의 불쾌한 감정선에 관심을 기울이니 판사 문유석의  일상 이야기를  모아둔 '개인주의자 선언'이 떠올랐다.


이기주의 자인 나와  개인주의 자인 문유석의 차이는 뭘까?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기주의(利己主義)와는 차이가 있다.'

 

어학사전의  정의를 살피며 생각하 남편이 느꼈던 기분 나쁨은 내가 마음에 상처를 줬기 때문이었다.


앞서 말한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법'에서 관대함과 이기심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방법도 타인을  속상하게 만들지 않는 범위를 찾아 안정점을  유지하라는 뜻일 것이다.


"여보, 이번 일은 내가 미안해."


남편은 이 말을 듣지 못했다. 지금 자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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