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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나무 Aug 21. 2022

건망증 부부

남편이 맞은편 안락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아 문득 말했다.


남편: 여보  우리 10월에 여행 간다 했지?


아내: 응.  어디로 가는지 알아?


남편: (해맑은 표정으로)응. 통영!


아내: (크게 웃으며) 당신 어떡하면 좋을까.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불쌍해서 눈물 나온다.


남편: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아닌가?

          (재빨리 뿜 뿜 표정을 지으며) 강릉!


아내: (눈 레이저를 쏜다)...


남편: 화장터!


아내: 화장터 말고 어디여?


남편:...


아내: (폭발하듯이 큰 소리로) 화개장터! 하동 간다고.


남편: 맞아. 나는 줄여서 말한 거. '개'자를 빼고 말한 거.


아내:(걱정스러운 말투로) 다음 달은 어디 가는데?


남편: 한양! 그런데 우리 서울 여행은 왜가?


아내: (한숨을 내쉬며) 한양이라니.  함양 간다고. 산삼축제 가서 경매로 산삼 사기로 했잖아. 작년 9월에도 갔다가 좋아서 올해 또 가기로 했잖아


남편: (크게 웃으며) 눈이 어두워 함양을 한양으로 써놨네.

   

남편은 노안으로 읽기와 쓰기 능력이 떨어졌는지 건망증도 덩달아 자주 나타난다. 아마 기억력도 저하되는지 대화할 때 명사를 떠올리지 못한다.


예를 들면 우리 그곳 '일정'가서 먹을까? 라면 '일월'이고, '제비집'에 가서 들깨수제비 먹자고 하면 '까치마을'을 가리키고, '도둑 시대'를 재미있게 봤다고 하면  '범죄도시' 영화를 시청했다는 뜻이다.


남편의 이런 행동 때문에 웃기도 하지만 웃지 못하는 이유는 나도 비슷한 증상이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커피숍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운동을 마치고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커피숍에 도착에 화장실을 다녀와 비치한 물을 먹으려 식수대에 머물고 있었다.


갑자기 낯선 여자분이 급하게 달려오더니 내 등 뒤에서 딱 붙는 게 아닌가?


순간 멈칫했다. 영문을 몰라 놀랐다.

아주머니가 속삭이며 치마가 속옷에 꼈다고 말하서 재빠르게 내려주었다. 나는 속옷과 함께  엉덩이를 훤히 보이고 홀을 걸었던 것이다.


눈앞이 캄캄하고 창피하고 부끄러워 도망쳤다.

한동안 이 커피숍을 가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신체적으로 노화가 오지만 뇌도 늙나 보다.

이를 어찌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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