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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나무 Dec 09. 2022

갓 생년 살자

2022.12.9(금)

다음 주 기말고사를 앞둔 교실 풍경은 나름 바쁘다.

보통은 자습시간을 요청하는데, 일부만 공부하고 나머지는 놀고 싶어 제안하는 것이다.

이를 대비해 준비를 해 놓지 않으면 보이콧을 당하기 때문에 긴장감을 주면서도 재미를 더한 학습자료가 필요하다.


지난번 연수 때 단어 찾기 게임이 생각나 초성 퀴즈를 접목한 학습 게임지를 만들어 배부했다.

역시나 폭발적인 인기에 아이들이 대거 참여하는 바람에 실력자, 우수자, 고수 단계를 만들어 난이도를 점차 높여갔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아주 뛰어나다. 45분에 해결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빗나갔다.

초성 퀴즈를 해결한 후 24개 단어를 찾아야 한다.

아래는 50x50 우수자 단계다. 60x60은 고수 단계인데 모두 해결한다.

어떻게 45분 안에 해결하는 것인지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게임지를 배부하자마자 비명을 지르더니 독학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식 부자를 찾아가는 것이다. 반에서 1등 하는 아이에게로 달려간다.

중상위권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제일 먼저 2~3명 모인다. 그리고는 초성을 찾는 아이와 단어를 찾는 아이로 분업화한다.


이들은 초성 퀴즈에 더 관심을 보이며, 교과서 시험 범위 내에 있는 내용을 읽기 시작한다. 이미 공부한 학생들이기에 초성 퀴즈는 쉽게 해결하는 편이다. 이들은 단어를 찾기보다 다음 단계 초성 퀴즈를 추가로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이들은 빠르게 해결하고 제일 먼저 종 치기 5분 전쯤 제출한다.


중위권 아이들도 위와 같은 행동을 하는데, 배경지식과 이해력이 중간 수준이기에 50~60% 이상 해결한다.  

이들은 모두 찾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지 수업 중간에 화장실 가는 이나 쉬는 시간까지 게임지를 놓지 않고 진행하기에, 독촉을 해서 수합해오기도 한다.

하위권 아이들의 행동이 재미나다. 이들은 세부류로 나뉘는데, 받자마자 멍 때리며 바로 엎드리는 아이 또는  이리저리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니며 지식 구걸? 하러 기웃거리는 아이가 있다. 물론 거부당하기 일쑤다. 이들을 받아주는 팀이 단 한 팀도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급우인데도 냉정하게, 가차 없이 차단한다. 몇 번을 시도하다 지쳐 혼자서 해결하다 20분쯤 지나 엎드려 잔다. 마지막 부류는 어깨너머로 지식 도둑?을 선택한다. 핀잔도  듣고, 서러움도 당하지만 몇 개씩 얻어오는 것으로 만족한다.


상위권 아이들은 평상시에 존재감이 없다가 경쟁방식의 학습방법이 필요한 경우 가치가 상승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떼로 한꺼번에 몰리기도 하는데, 지식 부자여서인지 너그럽게 던져준다. 이미 상점도 많아 필요하지도 않을뿐더러 성취감을 맛보는 것에 만족해하는 듯하다.


아이들 사이로 다니면서 문득 책상 위에 붙어 있는 종이를 발견했다.

"갓 생년 자?"가 무슨 뜻입니까?

"갓이 지금 막이란 뜻이잖아요.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자는 뜻이요."


아이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이해가 어려워 전자칠판으로 검색해 봤더니

  갓’(God)과 ‘인생(生)’을 합친 합성어로, 학업 및 운동 등을 열심히 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나는 속으로 말하며 아이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래! 오늘 단어 찾기 게임으로 자네들이 갓 생년 살게임지 만든 시간이 아깝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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