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내 할매 순옥
나이를 먹을수록 할매 앞에서
자꾸만 고개가 숙여지는 건
잘한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러다 목이 꼬꾸라질까 싶어 내려오기 전부터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침대를 바꿔드리자.
스프링이 흐물거려 둘이 앉기도 무서운 그 침대.
이제는 우리 할매의 단짝이 된 그 침대.
난 그 침대가 싫다.
할매와 친해진 그 침대가 밉다.
친구들과 할머니 이야기를 하다 보면 확실히 우리 할매는 독특한 구석이 있었다.
보통 할머니들은 자식 손주들이 내려오면 오래 머물다 가길 바라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 할매는 반나절이 넘어가면....
귀찮아했다.
아들, 딸, 사위, 손주 평등하게 귀찮아했다.
그녀가 모두를 귀찮아 한 이유는 바로
동네 핵인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할매는 부르는 곳이 많고, 갈 곳이 많았다.
나는 10살까지 무화과나무가 딸린 집에 살았다.
마당에는 커다란 평상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곳이 동네 핫플이었다.
화투를 치기 위해
잔돈을 바꿔가기 위해
파마 기다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계모임 약속을 잡기 위해
반찬 간을 보기 위해
여러 가지 이유로 동네사람들은 우리 집을 찾았다.
점심은 매일이 포틀럭파티였고,
내가 상장이나 성적표를 받는 날이면
목소리 가장 큰 이모가 모두에게 선포하듯 내 업적을 자랑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막걸리 심부름을 했고, 누군가에게 기쁜 일이 생겨도 어김없이 막걸리 심부름을 했다.
그 평상에는 희로애락이 꽃 폈다.
그리고 우리 할매는 그곳에 대장이었다.
무슨 이유로 무화과나무집을 떠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지금 살고 있는 파란 지붕 집으로 오고 나서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더 이상 모일 평상은 없어졌지만 사람들은 새로지은 경로당에 모이기 시작했고, 그곳에서도 우리 할매는 대장 노릇을 했다.
“네 할매가 얼매나 머리가 좋은지 아냐. 네 할매 없으면 암것도 못한당께. 네 할매가 경로당 이거 아녀. 이거. 최고.”
그때는 글자도 모르는 우리 할매를 똑똑하다고 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글자도 모르는 우리 할매가 대장 노릇을 하려면 얼마나 머리가 비상한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이렇게 찾는 곳이 많으니 할매는 먼 길에서 온 자식들 얼굴을 반나절 이상 볼 시간이 없었다. 밥을 후딱 해주고 금방 갔다 올게 라는 말만 남긴 채 해가 지도록 집에 오지 않았다.
중풍으로 투병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더욱더 열렬한 바깥사랑이 시작되셨는데 그 절정의
에피소드는 바로 내 수능 전날이었다.
할머니는 수능 한 달 전쯤 점쟁이에게 점을 보고 왔다며 내게 올해 대학 못 갈 팔자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나는 대성통곡을 하며 방을 굴렀고, 한동안 할머니에게 냉전의 기류를 내뿜었었다. 할머니는 내 기분을 달래주기 위해 경로당 가는 것도 줄이시며 애를쓰셨고 그렇게 수능 전날이 되었다.
“할머니 나 도시락 싸야 된대.”
“응. 네가 싸서 가야 될 거 같은디?”
“왜? 할매 어디가?”
“응. 그게.. 저.. 나 아침 5시에 버스 타고 가.”
“어디 가는데?”
“응.. 산. 눈이 잔뜩 와서 그렇게 이쁘당께.”
무슨 산이라고 했더라. 지리산이었나, 설악산이었나..?
서운함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 할매는 내 수능 전날 친구들과 관광여행을 떠나셨다.
도시락은 내가 잘 싸서 갔다.
그리고 재수를 했다.
용한 점쟁이.
한 번은 할매에게 물은 적이 있다.
“다시 태어나면 뭐 하고 싶어?”
사실 여러 번 물었었다.
할머니의 답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여행가
"또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나서 사방팔방 다 돌아다니련다. 저런 오지도 댕겨보고, 산도 가보고, 멋지지 않냐.”
그렇게 우리 할매는 어린 내 손을 잡고 사방팔방을 다녔다. 내가 머리가 크고 나선 경로당으로 산으로, 바다로 늙은 몸을 이끌고 열심히 풍경을 담으러 다니셨다. 내 친구들은 우리 할매를 멋있다고 했다. 나도 한시도 집에 있지 않는 우리 할매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런 멋쟁이 할매를 사랑했다.
그래서 나는 저 침대가 더 싫어졌다.
할머니랑 하루 온종일 시간을 보내고 있는 스프링도 시원찮은 저 침대가 미워졌다. 잠시 몸 뉘일 곳 이상도 이하도 아닌 놈이 온통 할머니의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할매는 쓰러진 후 천천히 경로당의 발길을 끊었다.
말을 잘 못하니 사람들이 자신을 바보 취급한다며 답답해했다. 동네 사람들이 그럴 리 없다는 걸 잘 안다.
그저 할매는 원활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던 것 같다.
그러던 중 할매가 경로당에서 바지에 실례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집으로 찾아와 괜찮다고 달래는 절친들의 위로에도 할매는 평생 가던 놀이터에 스스로 폐업신고를 했다.
그렇게 골목대장은 초라한 방구석 대장으로 전락했다.
침대와 한 몸이 된 채 TV 앞의 불빛만을 세상 삼아 남은 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 이후 할매는 밖에 구경 가자는 아빠의 제안에도, 내 애교에도 몸이 아프니 가기 싫다는 답변만을 내놓았다.
모든 게 귀찮다고 했다.
그러니 나는 괜히 더 침대가 신경 쓰이고 싫어졌다.
건강할 때 할매와 시간을 더 보내지 못한 내 잘못임을 알면서도 나는 엄한 침대에게 폭탄을 돌리고 있었다.
그래서 목포에 내려오며 결심한게 침대를 바꾸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자기 위로 차 생각을 바꾼 것이었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최대한 편안한 침대로 바꿔드리자.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자 얼마 남지 않은 효도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으로 침대 매장으로 향했다.
하나하나 직접 앉아보며 침대들을 비교했다.
머릿속에 할매와 했던 약속들이 스쳐 지나간다.
“할매. 딱 기다려. 내가 세계 일주 크루즈 타고 보내줄게.”
고등학교 때까지는 이렇게 약속했다.
“할매. 우리 미국 디즈니랜드 갈까? 1등석 비행기 태워줄게.”
대학교 때는 이렇게 약속했고,
“할매. 우리 일본 온천여행 갈까? 내가 꼭 데려갈게.”
친구들이랑 회사 차렸을 때는 이렇게 약속했다.
사는 게 쉽지 않음을 알고, 성공보다 실패를 맛보기 시작하면서 난 점점 언젠가는이라는 핑계로 약속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꺼내지도 못한 수많은 약속을 묻어둔 채 침대 매트리스에 엉덩이를 튕기고 있는 꼴이라니...
‘스프링이 느껴지지도 않고, 몸도 푹 감기는 게 참 좋네.’
“이 침대가 제일 잘 나가는 놈이에요. 편안함이 다르거든.”
“좋네요. 이걸로 주세요.”
“이거 진짜 진짜 좋은 침대야. 좋은 선택 한 거야.”
사장님, 진짜 진짜 좋은 침대인데,
왜 내 마음은 무거울까요?
이제는 내가 늦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때라서 그런 걸까요?
아직도 나는 침대에 몸을 맡긴 할매 보다
바람 따라, 계절 따라 몸을 맡긴 내 할매가
더 익숙하고 그리운데 말이죠.
뒤늦은 후회의 글을 남겨본다.
할매, 늦어서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