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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a Aug 08. 2023

인형이기를 거부한 순간
들이쉬는 첫 숨

[바비] by 그레타 거윅 PART.1

⚠️Warning : Spoiler


어릴 때는 왜 그렇게 바비 인형이 좋았을까.

유년기를 떠올려 보면, 항상 바비 인형이 떠오른다. 물론 내가 갖고 놀던 바비 인형은 아마, 바비월드에서 '이상한 바비'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어렸을 적 나는 바비 인형이 예뻐서 좋아했다.

바비의 작은 얼굴과 큰 눈,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 게다가 글래머러스한 몸매에 예쁜 옷과 액세서리까지. 마치 나도 어른이 되면 바비 인형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영화 <바비>는 바비와 켄, 두 캐릭터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두 가지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우선 살펴볼 부분은 ‘바비’의 역할이다. <바비>는 오프닝에서 바비 인형의 등장이 지금껏 아기 인형으로 소꿉놀이를 하며 ‘어머니’라는 역할만을 부여 받던 어린 여자 아이들에게 그들이 동경하고, 닮을 수 있는 대상이 됨으로써 페미니즘을 이루어냈다고 생각한다.


스탠리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장면을 오마주한 이 오프닝은 파격적이면서도 동시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공격적인 모습으로 아기 인형과 가사 인형용품들을 모조리 부수고 파괴하는 소녀들과 그 가운데 우뚝 선 바비의 모습은 양육자이자 어머니로 고정되어 있던 역할을 탈피했음을 의미한다. 여성의 진화인 셈이다.



하지만, 바비 인형은 정말로 여성의 진화, 페미니즘의 시작일까?

그 의도가 어떠했든, 현재의 리얼월드에서는 그렇지 않다. 내가 바비 인형을 좋아했던 이유인, 바비의 아름다운 외모는 리얼월드에서 오히려 여성들을 죄이는 코르셋이 되었다. 바비 인형의 큰 눈과 오똑한 코, 섹시한 입술, 큰 가슴과 잘록한 허리, 쭉 뻗은 다리와 넓은 골반은 미의 기준이 되었고, 여자들은 그 기준에 맞춰 ‘바비 인형 같다’는 말을 듣기 위해 스스로를 망치기 시작한다.


굶어 쓰러질 때까지 살을 빼고, 가슴과 골반에 조형물을 집어넣고, 온갖 성형 수술을 강행하고, 그럼에도 스스로 못생겼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정신적으로 한계까지 몰아세운다.


그렇다면 바비월드는 어떨까. 바비월드는 여성체인 ‘바비’가 기득권을 갖고 있다. 대통령 바비, 물리학자 바비, 대법관 바비, 노벨상 수상자 바비까지. 사회적으로 권위와 권력, 명예를 모두 가진 수많은 여성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사실, 바비 인형의 ‘역할’에 불과하다. 대통령 바비가 대통령 바비인 것은, 제조사인 마텔이 그냥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지, 바비가 이루어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전형적인 바비’라는 역할을 부여 받았던 우리 바비는 어땠을까.

그녀는 누구보다도 바비 인형이 이루어낸 여성 인권의 신장과 페미니즘에 대해 자부심이 있던 바비였다. 하지만 리얼월드를 오가며 사샤와 글로리아를 만나고, 여성이 겪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리얼월드의 여성에 대해 돌아보기 시작한다. 소녀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마텔은 사실, “우리 엄마도 여자니까 나는 여성 친화적이야”라는 개소리를 시전하는 남성들로 가득 찬 곳이었다.


그러니까 바비월드는 사실, 이런 남성들의 허락 하에 만들어진 낙원이었던 것이다. 대통령도, 물리학자도, 대법관도 남성 임원이 정해준 역할에 불과했던 것이다.


리얼월드를 겪었기에 바비는 이런 괴리감이 이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바비는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남성들이 창조해낸 세계에서 그들이 정해준 역할에 따라 살아가는 것 대신 이토록 역겹고 끔찍한 리얼월드로 기꺼이 나오기를 선택한다.


그녀가 그토록 자랑스러워 했던 여성의 진화를 위해, 그리고 아직도 켄덤랜드에 갇혀 스스로의 가능성을 버리는 모든 ‘바비’들을 위해 그녀는 바비가 아닌 바버라가 된다.


몸매를 드러내는 미니 원피스 대신 편한 바지를 입고, 하이힐이 아닌 슬리퍼를 신은 채로. 그렇게 리얼월드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바비들에게 ‘바비는 뭐든 될 수 있다’고 알려주기 위해 힘찬 한 걸음을 내딛는다.


남성의 세계에서 인정받고 역할을 부여받은 인형이 아닌,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바버라로써, 그녀를 만들어낸 어머니의 든든한 지지를 발판 삼아 그렇게 세상으로 나아간다.



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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