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 여유롭고 평화롭고 게다가 비도 그친 완벽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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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까지 가는 길은 진짜 힘겨웠는데, 도착하고 난 식당의 분위기는 정말 최고였다.
주변에 큰 건물도, 북적거리는 사람들도,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도 모두 없이 오로지 정갈한 빗소리만 들렸다. 게다가 발리 특유의 진한 향 냄새도 없고, 약간 눅눅하고 비릿한 풀냄새와 비냄새, 그리고 간간히 들려오는 새소리까지 어우러지니, '고즈넉하다'는 말보다 이 분위기를 더 잘 표현할 수 없었다.
위에 움막처럼 큰 짚단같은 지붕이 얹어져 있어서 전통적인 느낌도 나고, 정말 자연 한 가운데에서 밥을 먹는다는 실감이 났다. 특히 주변이 전부 논밭과 풀들로 초록빛이다보니 저절로 눈도 마음도 편안해졌다.
식당 측면에 뷰 보면서 먹을 수 있는, CHORA 레스토랑에서랑 비슷한 뷰의 자리가 있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오는 관계로 거기는 포기했다. 그래도 충분히 자연뷰 중식 너무 최고.
발리에 왔으니 당연히 먹어봐야 할 현지식들을 시켰다. 미고렝이랑 나시 짬뿌르, 그리고 사떼 아얌까지. 맛은 특출나게 맛있다! 하는 정도는 아니었으나, 분위기 탓일까. 굉장히 맛있게 느껴졌다. 사실 사떼 아얌은 예전에 족자카르타에서 먹었던 그 맛이 아니라서 아쉬웠다. 이런 땅콩 소스맛이 아니라 조금 더 불맛이 나는 깊은 맛이 있는데.
나시 짬뿌르는 생각보다 그냥 그랬고, 미고렝이 맛이 괜찮았다. 그래도 역시 더운 나라라서 그런지, 간이 셌다. 미고렝도 이 식당에서 먹은 음식 중 제일 맛있는 거지, 이전에 데뽁에서 먹었던 그 맛은 또 아니었다. 마치 타지에서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현지인 같은 리뷰인듯.
식당 뷰 다시 올려야지. 너무 예쁘고 이 때의 기분이랑 느낌이 아직도 생각나고 좋다. 그 폭우를 뚫고 와서 여유롭고 한가하게 빗소리 들으면서 맛있는 밥을 먹을 때의 그 느낌이란. 1달도 더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생생하다. 일에 치이면서 바쁘다보니 이곳의 그 여유로운 분위기가 너무 그립다. 나 돌아갈래..
밥 먹고 나왔더니 비가 정말 미친 듯이 쏟아졌다. 아까 식당 들어갈 때도 많이 온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러다 다 잠기겠다- 싶을 정도.
그런데 논밭 뷰가 너무 예뻐서 그 폭우마저도 이제 아름다운 한 운치로 느껴졌다. 맛있는 음식 먹고 기분 좋았던 것도 한몫했다. 사람의 기분이 이렇게 같은 폭우임에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구나 느꼈다. 그래도 비가 엄청나게 와서 그랩 타니까 다리에 치마에 다 젖어 있더라.
https://goo.gl/maps/oit1kpLp1SEDTJja8
아까 밥먹으러 가면서 봐둔 카페가 있었다.
SNOW JAM CAFE 였는데, 여기는 원래 가려고 계획했던 장소는 아니었으나 즉흥적으로 예뻐보여서 픽했다. 도착하니 내부가 굉장히 넓고 한국식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다.
일단 이 넓은 공간에 우리밖에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 좋았다. 마음대로 테이블도 쓰고 계속 여기저기 다니고, 밥 먹을 때도 배고파서 정말 밥만 먹었다가 드디어 여유롭게 앉아서 서로 수다를 떨 시간이 생겼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 사진이 마음에 든다.
동그란 테이블 위에 귀여운 장난감, 얼핏 보이는 창밖으로 펼쳐진 녹색의 향연까지.
별 거 없는 평범한 사진인데도 그 카페만의 분위기가 잘 담긴듯 해서 마음에 든다.
이 카페에서 제일 좋았던 게 야외 테이블이었다. 마치 우리나라 정자 느낌이 나는데, 사방이 탁 트여있어서 또 앉으면 예뻤을 것 같은데 문제는 좌석이 다 축축했다. 비가 안 왔으면 이 야외 테이블들이 만석이었을텐데, 그리고 우리도 야외에 갔을 텐데 아쉬웠다. 아쉬운 대로 카메라로 열심히 담았다.
테이블 외에도 야외 쪽 자체가 굉장히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한국적이었던 내부랑 다르게, 야외는 좀 더 초록초록하고 발리 느낌이 강했다.
돌담길 사진 예쁘게 나오더라. 옷 색도 의도치 않은 톤온톤이라 좋다.
제일 마음에 들게 찍힌 사진.
아리 애스터 영화의 한 장면 같이 찍혔다. 비 내리는 것도 사실적으로 찍히고 어둡지는 않으면서 묘하게 크리피한 느낌을 주는 게 취향 저격 딱이다(?) <유전> 속에 나오는 인형의 집 같지 않은가.
비가 와서 날씨가 제법 쌀쌀했기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랑 팬케이크를 시켰다. 발리에서 먹은 커피들이 대체로 다 순했던 것 같다. 한국만큼 원두를 바싹 태우지 않는 느낌. 커피 맛에 정통하지는 않으나, 입맛에는 발리 커피가 더 잘 맞았다. 팬케이크는 사실 별다른 거 없이 메이플 시럽만 뿌려져서 나와 아주아주 조금 아쉬웠다. 생크림이나 과일 토핑이 있었으면 더 맛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빵 자체가 보들보들하고 달달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이제 슬슬 나가서 다른 곳도 구경을 하고 싶었다.
당연히 비가 오겠거니 하고 별 기대 없이 언뜻 밖을 봤는데,
드디어 비가 그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