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by 그레타 거윅 PART.2
⚠️Warning : Spoiler
▼ <바비> Part 1. ▼
https://brunch.co.kr/@0745b7e1d0614aa/12
영화 속 ‘바비’의 역할에 대해 살펴 보았다면, ‘켄’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제목부터 ‘바비’인데, 생각보다 켄의 분량이 제법 많았다. 처음에는 그냥 바비 이야기나 더 보여주지 상황 파악도 못 하고, 하는 행동마다 우스꽝스러운 켄을 왜 자꾸 보여주는 걸까 짜증도 났다.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기시감이 들어서 켄의 모습이 더욱 싫었다.
영화가 끝나고 잠시 카페에 앉아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왜 이렇게 켄의 존재가 거슬렸을까. 켄에게서 느껴진 기시감은 무엇이었을까.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영화 속 ‘켄’의 역할은 리얼월드의 여성과도 같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바비월드는 완벽하게 리얼월드가 리버스된 세계라고 보면 된다. 여성이 모든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여성들이 모든 권리와 권력, 힘을 가진다. 이러한 세계에서 약자는 켄으로 대변되는 남성이다.
바비들은 서로를 구분할 수 있는 역할도, 정체성도 있다. 하지만 켄은? 켄에게 부여되는 역할은 딱 하나이다. 바비의 남자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많이 본 설정이지 않은가?
켄은 바비의 관심을 받을 때만 행복하다. 바비와 함께 있을 때만 유의미한 존재가 된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바비의 눈길 한 번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꾸미며 노력한다. 켄에게 있어서 유일한 고민거리는 다른 켄이 바비의 마음을 가져갈 것이라는 불안감 뿐이다.
다른 켄과 싸우는 방식도 어설프고 우스꽝스럽다. 마치 한 마리의 닭처럼, 서로 펌핑된 가슴 근육이나 내보이며 섹시 대결을 펼치고, 후반부의 켄들의 전쟁 장면에서도 서로 고양이처럼 하악질이나 해대는 등 보기 민망할 정도로 우스워 보인다.
그렇게 영화관에서 한참을 비웃고 나와서 생각해보면, 문득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영화들이 있다. 세상을 구하는 임무를 하는 남성들 옆에서, 세계 멸망 직전임에도 가슴과 엉덩이가 강조되는 야한 의상을 입고 마치 꽃밭 같은 머릿속을 뽐내며 남성의 관심 한 자락을 받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여성 캐릭터들의 모습은 <바비>의 켄과 다를 바 없었다.
그동안 가슴과 엉덩이나 흔들어대는 여성 캐릭터들을 수십년 간 봐오면서 얼마나 가소롭고 우스웠을까. <바비> 한 편만 본 나도 이렇게 켄이 우스운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가 지금까지 본 모든 영화들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미디어를 통해서 여성은 그간 얼마나 불쾌하고, 짜증나고, 우습고, 조롱 당하는 입장이었던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켄을 보면서 비로소, 그리고 아주 생경하게 그 괴리와 불쾌함을 전부 깨달아버렸다.
켄의 분량은 전혀 많지 않았다.
각성제로써 그는 일관되게 한 가지 의미를 전달했고, 그 전달을 위해서는 아주 합당하고 충분한 서사였다.
마치 <겨울왕국2>의 크리스토퍼를 보는 느낌이었달까. 켄의 역할에 대해 이해하고 나니 그의 적지 않은 분량 마저도 유의미하게 느껴지긴 했다. 그렇다고 좋았다는 건 아니지만.
<바비>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유의미했고, 좋았다. 유쾌하지 않은 메세지를 유쾌하게, 그리고 예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끝으로 영화의 캐치프레이즈를 인용하며 마치고자 한다.
바비는 뭐든지 될 수 있다.
정해진 역할을 거부한 채 ‘바버라’가 되기를 선택하며 인간으로써 첫 숨을 들이마신 바비처럼,
바비는 뭐든지 될 수 있다.
[덧붙임]
바비인형을 갖고 놀던 주인이 소녀인 사샤가 아니라 어머니인 글로리아인 점도 너무 좋았다.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보통 ‘어머니’라고 하면 온갖 욕구와 감정이 거세된 존재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돌봐야 할 자식이 생겼다고 해서 어머니가 희생의 대명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도 우울감을 느끼고,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셀룰라이트와 지방에 스트레스를 받고, 여전히 인형을 갖고 노는 것을 사랑하는 그저 한 사람이라는 것이 강조되어서 굉장히 좋았다.
나와 디저트 카페를 가는 걸 좋아하고, 톰 크루즈를 좋아하며, 여전히 거울 속에 비친 몸매를 들여다보며 고민을 하는 우리 엄마가 떠올라서 더욱, 더욱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