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감정
주말에 비 예보가 있었다.
금요일 오후 구름이 많이 끼고 흐리어 기분이 다운됐다.
차 키를 집어 들고 집을 나섰다.
지인이 한참 전 추천했던 부천 백만 송이 장미공원이 생각나 그리로 향했다.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는데 오늘이 아니면, 주말에 비가 오고 나면, 볼 수 없을 것 같은 생각과 흐린 하늘이 딱인 것 같아 무조건 나선 것이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라 차는 힘들이지 않고 40분 만에 나를 목적지에 내려놓았다.
부천 백만 송이 장미공원은 도심 속에서 보기 드물게 넓고 잘 정돈된 공원이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에 자리 잡고 있으며, 면적만 해도 54,000 ㎡에 이른다. 1998년, 부천시가 시민들의 휴식 공간을 목표로 조성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약 150종, 15만 그루의 장미가 심어져 있다. 이름 그대로 '백만 송이'의 장미를 테마로 삼아 조성된 공원답게, 장미의 종류와 색감이 실로 다양했다.
붉은색, 분홍색, 노란색은 물론이고, 보랏빛을 머금은 신비로운 장미, 흰색과 붉은색이 오묘하게 섞인 장미 등 상상 이상의 다채로운 색과 모양이 펼쳐졌다. 그날 나는 장미가 그렇게나 많은 종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흔히 보던 장미의 틀을 깨고, 섬세한 꽃잎 하나하나에 담긴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5월 24일 토요일부터 6월 8일 일요일까지 총 16일간의 축제 기간이었는데, 기간이 끝나고 간 것이다. 둘러보기 좋은 흐린 날씨 탓이었을까 축제 기간이 끝났음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주차장 또한 자리가 없었다. 공원 근처 주택가에 주차하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공원을 거닐었다.
잿빛 하늘 아래 펼쳐진 장미의 향연은 쨍한 햇살 아래보다 오히려 더 깊고 은은한 매력과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축제 기간이 끝난 직후라 활짝 핀 장미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지만, 시든 장미들도 제법 눈에 들어왔다. 시든 꽃들은 자연의 순리를 담담히 보여주는 듯했다. 화려함 뒤에 숨겨진 덧없음, 시간의 흐름 뒤에 감춰진 감정까지.
시든 꽃들을 보니 갑자기 옛 노래 구절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나옴과 동시에 '나의 남은 인생의 시간은 얼마큼일까'를 생각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어릴 적 들었던 가사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뜻으로 한 번 성한 것은 얼마 못 가서 쇠하여짐을 이르는 말로 우리네 인생사도 그렇다는 것인데 시든 꽃을 보는 순간 왜 떠올랐는지. 아마 나도 나이가 들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아름다운 꽃들보다 시든 꽃이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어느새 한 해의 절반이 흘렀다.
아직 6개월이 남았다는 마음보다는 벌써 지났다는 아쉬움이 먼저 스친다.
시간은 늘 그런 식이다. 어느 날 문득, 앞보다 지나온 뒷길이 더 많다는 걸 깨닫게 하는 존재.
나이가 들수록 이 감각은 더 짙어진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한 해가 접힐 때마다 시간이 더 빠르게 달리는 것 같다.
오월의 여왕이라 불리는 장미도 자신을 뽐내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사람의 인생 또한 그러하다. 언제가 봄날이었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나이 들어 새삼 뒤돌아보니 어느새 가을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