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과 함께 오는 일상의 틈

에효~~

by 여행강타

"ㅇㅇ님 예약은 내일인데요."

"아! 제가 날짜를 착각했나 봐요. 만약 오늘 시간이 된다면 온 김에 결과를 확인하고 가고 싶습니다."

"네 괜찮습니다. 먼저 호흡기 내과 다녀오세요. 거기도 예약 날짜가 내일인데 시간이 되려나 모르겠네요."


일주일 전, 지난주 월요일 일찍 병원에 갔다 기다리는 게 싫기도 했고, 12시간 금식이어서 빨리 검사를 마치고 물이라도 마시기 위해 병원 오픈 시간보다 이르게 병원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피검사와 소변 검사를 하기 위해 본관 3층 채혈실로 올라갔다. 허걱~ 이른 시간이라 몇 명 없을 것으로 예상했던 나의 생각은 빗나갔다. 아직 병원 업무 시작 시간 전인데 대기 번호표를 뽑으니 23번이다. 채혈실을 뒤로하고 엑스레이와 CT를 찍기 위해 본관 3층으로 향했다. 다행히 그곳엔 대기자가 채혈실 만큼 많지 않아 약간의 기다림 후에 두 가지 검사를 마쳤다.


다시 채혈실로 오니 내 차례가 지나쳐 있었다. 엑스레이와 CT촬영을 하며 제법 시간이 흘렀나 보다. 다시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 내 차례가 되어 채혈을 했다. 혈액 채취 후, 작은 소변통 두 개를 건네받았다. 간호사가 통에 눈금을 그어 주며 그 선까지 받아다가 밖에 있는, 검사실로 가져갈 통에 넣으라고 말했다. 소변통을 건네받으며, 6개월 전 신장내과 간호사로부터 건네받은, 채혈실에서 받은 통보다도 세배는 더 큰 소변통을 집에 두고 안 가져온 게 생각났다. 어쩌지 집에 다시 갔다 와야 하나, 시간이 제법 걸리는데 어쩐담. 내일 다시 올까?' 한참을 복도 의자에 앉아 고민을 했다. 나이가 드니 느려지는 행동만큼이나 생각도 재빠르지 않다. 아! 방법이 생각났다. '역시 서두른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야' 속으로 되뇌며 신장내과에 가서 간호사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다시 통 두 개를 받아 화장실로 향했다. 문제는 12시간 금식이라 물조차 먹지 못해 소변이 병원에서 원하는 만큼 나와주지 않는다는 거였다. 다른 검사는 모두 끝난 상태라 일층 편의점에서 500미리 생수 두 병을 사서 단숨에 들이켰다. 몸을 최대한 춥게 만들었고 병원 복도를 한 시간여 서성거린 후에야 병원에서 원하는 만큼의 양을 받아 하나는 검사실에 하나는 신장내과에 제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왜 오늘이라고 찰떡같이 믿고 병원으로 향했을까?

잊지 않으려고 예약증을 달력에 줄줄이 붙여 놓고 생활했것만, 다시 찬찬히 예약증은 확인도 하지 않고 당연히 오늘이라 생각하고 예약증을 떼어 가방에 잘 챙겨서는 병원으로 갔던 것이다. 우습지고 않았다. 놀랍지도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일어나는 실수들에 당황해하지도 않는다. 실수가 하나 둘 늘어가면서 그저 받아들이다 보니 '하나 늘었네' 생각될 뿐이다. 하지만 깜빡하는 나와 마주할 때마다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 마음 편할 수많은 없는 일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런 일의 반복인 것 같다. 몸에도, 기억에도, 습관에도 조금씩 조용히 스며들고 있다. 예약 날짜를 잘못 기억한 것도 이것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실수들이 꼭 나뿐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조금 더 들여다보게 만든다. 왜 착각을 했는지, 요즘 너무 바빴는지,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나를 살피는 시간을 갖게 됐다. 예전에는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겼다면, 지금은 자주 멈춰서 점검을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제는 실수해도 괜찮은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럴 수고 있지"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는 나이. 내 실수에 면죄부를 주는 게 아니라 이해를 건넬 줄 아는 나이. 나 만이 하는 게 아닌, 나이가 듦으로 누구나 갖게 되는 실수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

나이가 들면 감정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조심스러워진다. (내 경우엔 그렇다.)

이젠 완벽하게 기억하고 완벽하게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깜빡이고 실수하며 살아간다. 중요한 건 그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다. 나를 탓할 수도 있고, 웃어넘길 수도 있다. 나는 오늘 웃어 넘기기로 했다.


다행히 호흡기내과, 신장내과, 가정의학과 모두 많은 시간 기다리지 않고 담당 의사를 만날 수 있었고, 검사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6개월, 1년, 2년 주기로 추적 검사 해오던 호흡기내과 검사는 폐에 이상이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더 이상 검사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감사의 말을 여러 번 하고 방을 나왔다. 신장내과는 소변 현미경 검사 결과 아직도 많은 양은 아니지만 피가 조금 보인다며 다시 6개월 후 검사를 하기로 했다. 가정의학과는 검사결과 약을 꾸준히 잘 복용해 고지혈 수치는 많이 좋은 편이며 당뇨 전단계 진단은 6개월 전 보다 조금 좋아졌다며 "열심히 관리하셨나 봐요"라는 말을 들었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서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마음 한 구석에 무겁던 그 무엇이 슬며시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지난 6개월 동안 잡곡밥 소식에, 빵과 과자는 80% 이상 줄였고 일주일에 3~4번 한 시간씩 운동장을 뛰었다. 정말 하기 싫고, 따라주지 않는 체력에도 운동에 최선을 다 했다. 6개월 전처럼 아무 변화가 없다는 말을 듣게 될까 봐 살짝 걱정도 했다. 작은 수치지만 내려갔다 하니 힘듦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오늘도 또 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