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싹
일요일 느긋하게 일어나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 동물농장을 시청한 뒤 언제 올라갔다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뒷동산(모락산)엘 가기로 마음먹고 등산화에 장갑 스틱까지 준비하고 여유로이 본인 페이스에 맞춰 천천히 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오르는 거라 힘에 부처 자주 쉬는 타임이 필요했고 얼마 가지 않아 '포기하고 돌아갈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평상시 아침을 거르는 편이라 오늘도 두유 하나만을 먹고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는 시간에 계속 오르려니 어느 순간 당이 훅 떨어지는 게 아차 싶었다. 물을 워낙 좋아하지 않고 뒷동산이라 물도 없이 예전 생각만 하고 올라갔더니 후회막급이었다. 코로나 때까지만 해도 아침 운동으로 올라가는데 50분 내려오는데 40분 물도 없이 맨몸으로 다녀와서 하루일과를 시작하곤 했었는데 흔히 어른들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더라'란 말처럼 어느 순간 걷는 게 싫어지고 운동이 하기 싫어지더니 산엘 전혀 가지 않게 되었다.
(적당한 날씨와 연초록의 나뭇잎이 발걸음을 불렀다. 그렇지 않고서야 생각도 않고 있다가 왜 갑자기 산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으며 빈속에 힘들 것을 알면서 올라갔을까?)
포기하고 내려가고 싶은걸 잠시 한 템포 쉬면서 마음을 다잡고 전에 하던 대로 절터 약수터까지만 쉬엄쉬엄 가보자 거기서 물 한 컵 마시고 나면 내려갈 수 있는 기운이 날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약수터에 도착해 시원한 물 한 겁을 마시고 벤치에 앉아 잠시 쉬니 다시금 내려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사부작사부작 발걸음을 옮겼다. 솔밭 구간을 지나는데 등산객 한 남성분이 등산로 바로 옆에 뭔가를 휴대폰으로 찍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남에 일에 일도 관심 없는 그 여자는 "뭘 찍으시는 거예요?'라고 물어봤다.
"잣이 싹을 틔워 올라왔어요. 얼마나 자연의 힘이 대단합니까?"
"그래요? 어머 정말이네요~ 나도 한 장 찍어야겠네요~"
딱딱한 잣모자를 쓰고 있는 어린싹을 요렇게 저렇게 사진을 찍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20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온 직후 자전거를 타고 출근 중 넘어져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했고 절대 산행을 하면 안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도 나름 무릎의 힘을 붙이고자 사브작 모락산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는데 왜 그동안은 보지 못했을까을 시작으로 무엇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기에 전에도 있었을 이 예쁜 모습을 지나쳤을까 까지.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날씨와 연초록의 산 색깔이 발걸음을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산에 올랐고 포기하고 내려가려던 마음을 고쳐먹고 처음 마음먹은 대로 목적지까지 갔고 돌아오는 길에 어느 등산객의 행동으로 힘들게 싹을 틔워 세상 밖으로 살며시 모자와 함께 고개를 내민 모습을 보면서 중간에 포기하지 않길 잘했구나 생각했다. '너도 언 땅 밑에서 엄청 힘들고 고된 시간을 버티고 참으며 견디어 이 좋은 봄날에 세상 밖으로 나왔구나 고생했다. '위로에 말도 나즈막히 해주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힘든 일 험한 일이 왜 없었을까마는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잘 견디고 헤쳐가며 얼마만큼 남아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인생을 잘 살아보리라 생각했다. 또한 심심함을 못 참는 성격이지만 너무 앞만 보고 시간을 보내지 않고 자세히 천천히 옆도 뒤도 보고 살피며 살아야겠다 다짐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