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그녀는 심심한 게 싫다. 고요한 집안에 홀로 있는 것이 싫다. 그렇다고 시끄럽고 북적대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할 일 없이 집안에서 시간 죽이는 게 싫은 것이다.
좀 더 젊어서는 주부로 직장인으로 아내로 엄마로 일인 다역을 하며 세월의 흐름조차 느낄새 없이 시간을 보냈다. 거기에 등산에 테니스를 보태 어떻게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지나가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바쁘게 중년의 시간을 보냈다. 문뜩 그녀 자신을 뒤돌아 봤을 때 '어느새 이렇게 까지 나이가 들었을까?' '앞으로의 삶은 어떨까?'라는 생각에 시간의 흐름이 무섭게 느껴져 앞으로 더 정신 차리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살이에도 시큰둥해진 그녀는 마음의 양식과 교양을 쌓고자 그동안 시간이 없어 못했던 공부와 문화강좌 프로그램을 여럿 신청해 매일매일을 다시금 바쁜 나날들로 만들었다. 공부에 진심이기도 한 그녀는 따라주지 않는 머리를 원망하면서 힘들다는 핑계로 가끔 수업에 땡땡이도 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 나갔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게 멈춰 선 상태에서 힘들고 지치고 여러모로 모두가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버티고 또 버텨 코로나가 종식되어 갈 즈음 주위에 아는 동생들이 심심해하지 말라고 봉사 단체에도 가입시켜 주고 시니어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소개해 주었다.
그녀는 사실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한번 도전해 보는 거지 뭐'라는 생각으로 면접을 보러 갔고, "이런 일 해 보셨나요? 할 수 있겠어요?"라는 질문에 "한 번 도전해 보려고 왔습니다."라고 대답했고 그렇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오후 5시부터 10시 30분까지, 그녀는 그 일이 너무너무 재밌고 즐겁다.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일단 할 일이 많다. 손님 응대를 해야 하고, 제품의 날짜 확인을 일일이 해야 하고, 팔리는 물건만큼 빈칸을 채워 넣어야 한다. 심심한 걸 싫어하고 바지런한 그녀의 성격에 적격인 것이다. 돈을 벌러 간다는 생각이 아닌 놀이터에 놀러 간다는 생각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교대 시간 보다도 더 일찍 간다. 손님이 없는 잠깐의 여유로운 시간에도 그녀는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쓸고 닦고 과자 각 맞추고 라면 진열하고 혼자 뿌듯해한다. 오는 손님 가는 손님 솔톤으로 인사하고 '이 동네 손님들은 하나같이 친절해 열이면 열 다 인사를 받아준다니까' 속으로 흐뭇해하고, 가끔씩 어려운 일이 생겨도 그동안 쌓인 노하우로 해결하고 나면 자존감 뿜뿜 생겨난다.
오늘도 혼자 흐뭇한 일이 한 건 있었다. 편의점으로 택배를 찾으러 손님 한 분이 왔는데 상대방이 보내준 사진만을 보여주며 택배를 달라한다. 큐알코드가 없으면 못 드린다고 해도 자꾸 나 몰라라 하는 게 좀 이상하다. 말도 살짝 어색한 게 생김새는 백 프로 한국 사람인데 한국사람이 아닌 것 같다. 손님의 휴대전화를 이리저리 찾아 큐알을 찾아 포스기로 찍고 택배를 건네주었다. 본인은 진짜 몰랐다며 몰라서 미안하고 해결해 줘서 고맙다며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하고 갔다.
심리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 "난 그 일이 왜 그렇게 재미가 있을까요? 가끔 안쓰러운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일이 질리지가 않아요." 말씀드린 적이 있었는데 교수님 왈 "다른 사람의 비해 성취 욕구가 강해서 그런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뭐라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다니세요, 나이가 들수록 일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처음에는 안 하던 일을 하려니 적응하는데 좀 힘들었지만 하나하나 배우고 해결해 나가는 것 또한 뿌듯함으로 다가왔고 지금은 그녀의 하나의 생활 루틴이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뿐이고(더 하고 싶어도 시켜 주지도 않음. 시니어를 위한 사업이라 시간이 정해져 있음) 저녁 시간대라서 낮 시간 동안 그녀가 하고 싶은 공부 다 하고, 친구들 만나 식사하고, 차 마시고, 수다하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생각이다.
언제까지 그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