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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강타 Jun 19. 2024

그 여자 그녀 이야기

밥상머리에서의 대화



주말 아침 보통은 살짝 늦잠을 자며 아침을 거르는 편인데 오늘은 고양이 동화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날이라 늦잠도포기하고 일찍 일어나 움직였다. 2주 전 건강 검진 예약을 해둔 상태이고 검진 전 4시간 금식해야 한다는 병원문자를 받았기에 평상시와 같은 6시에 일어나 동화 밥도주고 활동하려니 허기가 몰려왔다. 병원 가기 전 아침을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그녀는 아들에게 밥을 먹을 것이냐고 물었다. 그녀의 아들도 평소 아침을 거르는데 오늘 아침엔 웬일로 먹겠다는 대답을 했다. 대충 식탁을 차리고 청국장찌개에 밥을 먹다가 무심히 고개를 돌려 전기 오븐을 보게 되었다. 오븐 안에서 김말이 다섯 개가 나란히 누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증상이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찌개나 국을 끓여놓고 식탁을 차리며 그 끓여놓은 찌개나 국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밥을 다 먹을 즈음이나 다 먹고 난 후에 생각이 나서 다음 날 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제저녁도 그랬다. 아들의 저녁 식탁을 준비하며 오븐 안에 구워놓은 김말이를 또 잊고 주지 않은 것이다. 마주 앉은 아들에게 김말이 이야기를 하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여졌다.


"물어볼게 하나 있는데요 여자들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나면 머리가 고장이 난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요?"

"고장이 난다기보다는 아이 낳는 게 많이 힘든 일이니 깜빡 증상이 생긴다고나 할까, 엄마도 너 낳고 나서부터 깜빡 증상이 생긴 것 같아. 그런데 왜?"

"회사에 저 보다 세 살 많은 여직원이 있는데 일하는데 조금 힘들어해서 제가 피드백을 주면 바로 울어요. 왜 우냐고 물으면 멀티가 안 되는 자기 자신이 싫어서 운데요. 아이가 셋 있대요."

"그래서?"

"그렇다고요. 같이 일하는 직원들도 그 직원 때문에 조금 힘들어해요."

 

아들의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 여직원의 입장이 되어 구구절절 한참을 이야기했다. '안 봐도 비디오다'란 말처럼 그 여직원의 삶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가 셋이라면 퇴근 후에 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아이 셋 케어도 해야 하고 가정 살림도 해야 할 텐데, 어찌 보면 직장에서 하는 일보다 퇴근 후 집에서의 일이 더 많고 더 힘들 것이고,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 또한 없을 것이다. 사십 대 초반이라 했으니 아이들 역시 어릴 것이고 지금쯤 얼마나 시간을 쪼개어 살고 있을까?를 생각하니 말이 많아졌다.


그 여자는 아들 하나를 키우며 겪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제일로 무섭다는 중학교 2학년, 공부는 뒷전이고 반항심이 극에 달 했을 때 갑작스러운 가출, 그리고 20일 만에 컴백,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살얼음판 생활. 그 힘듦을 그 여자는 테니스를 치면서 이겨냈다. 사춘기를 겪는 아들도 힘들었겠지만 그 여자 또한 만만찮게 힘들었다. 그렇치만 좋아하는 스포츠를 하며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 운동을 하며 순간순간 잊고 지나가다 보니 사춘기가 지나 있었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에 극복하고 지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구든 스트레스 해소법, 숨 쉴 수 있는 어떤 한 가지씩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운동이 됐던 취미 생활이 됐던 한 가지는 꼭.


아들이 다니는 회사의 사무실 여직원은 아이가 셋이나 된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운동이나 취미를 위한 시간은커녕 아이들 케어할 시간도 부족할 것이다. 회사의 퇴근시간은 또 다른 일 즉 집안일의 출근시간일 것이고. 멀티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본인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일 텐데... 그 여자의 생각이 틀린 것일 수도 있다. 개개인의 생활은 다 다를 테니까 하지만 보편적인 가정은 그 여자가 지내온 시간처럼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는 순간 짠한 생각이 먼저 들었고 이웃이라면 가서 도와주고 싶단 생각까지도 들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나도 직장 다닐 때, 네 사춘기로 속 썩 일 때 엄청 힘들었거든"을 시작으로 아들의 이야기는 더 들어보지도 않은 채 "일을 좀 못하면 어때? 얼마나 힘들면 멀티가 안 된다고 울겠니? 멀티 되는 네가 좀 더 일을 해, 너도 힘들겠지만 상사로서의 배려라는 걸 보여줘." 커리어 코칭 수업을 듣고 있는 그 여자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 나는 걸 알면서도 경험이 먼저 앞장섰고 같은 길을 걸어온 여자로서, 노파심에 일장 연설을 했다. 그 여자는 안다. 아들이 잘할 거라는 것을. 또한 그 여직원도. 모든 워킹맘들이 힘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엄한 아들에게 안 하던 폭풍 잔소리했다. 워킹맘 파이팅!



사진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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