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Q 시험
드디어 끝났다.
ITQ(Information Technology Qualification) (한국) '정보기술자격시험'
시험이 모두 끝났다.
지난해 가을 평생대학 글쓰기 교실을 잠시 다닌 적이 있다. 글쓰기 선생님께서 글쓰기도 가르치셨지만 컴퓨터로 책 발행하는 것도 가르치셨는데 전혀 컴퓨터를 모르는 그녀로서는 보통 애로사항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평생대학 컴퓨터 반에 등록을 했고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아주 기초적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조금만 깊이 있게 들어가면 도통 머릿속에 입력이 되지 않았고 이해하고 넘어가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이 있는데 집에 와서 연습도 없이 일주일 후에 가서 컴퓨터 앞에 앉으니 이 나이에 기억나지 않는 것이 정상일 수밖에. 전반기 동안 수박 겉핥기식으로 한글부터 엑셀까지 진도는 나갔지만 수강생 중 누구 하나 깨끗하게 이해한 사람 없이 수업이 종강되었다.
컴퓨터 선생님은 발이 부르트도록 강의실을 앞에서부터 뒷까지 3시간 동안 뛰어다니며 한 사람 한 사람 개인레슨하듯 가르치셨지만 누구 하나 깔끔하게 이해한 사람이 없으니 수업이 종강하기 몇 주 전부터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매일 연습하지 않으면 머리에 입력되지 않아요. 연습 없이 일주일에 한 번 와서 하고 가면 누구라도 다 잊어요. ITQ시험에 도전하세요. 제가 내 준 숙제만 열심히 하시면 돼요. 모두 도전하실래요?".
그렇게 해서 초급반 수강생 전원이 후반기 ITQ반에 등록을 했고 7월 5일 시험 통과를 위해 출발했다.
많게는 67세 왕언니, 그다음으로 그녀, 내년에 환갑을 맞는 3명의 멤버, 제일 적은 나이가 57세. 자격증을 취득해 일자리를 얻을 것도 아니고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으니 안되면 또 하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모두 시작했지만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첫 번째 자격증 도전은 한글.
한글, 엑셀, 파워포인트 세 가지 중 누구나 제일 쉽다고 말하는 한글부터 시작을 했다.
표 만들고 그림 넣고 타자 치고 어려운 것은 없었지만 타자 치는 속도가 너무 느려 주어진 시험시간 1시간 안에 모두 마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7주 동안 매일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하고 연습을 해도 시간은 단축되지 않았고 시험에 도전한 수강생 전원은 B등급에 만족하며 시험에 통과했다.
두 번째 자격증 도전은 파워포인트.
파워포인트의 문제는 도형을 잘 찾는 것인데 하나같이 나이들이 있다 보니 돋보기는 기본으로 장착하고 찾아보지만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한글만큼 타자 치는 부분이 많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으로, 역시나 7주 동안 내주신 숙제와 연습으로 한 시간 안에 시험을 마칠 수 있게 했고 선생님도 충분히 A등급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기에 자신감을 장착하고 시험장으로 들어갔으나 또 B등급으로 통과했다.
세 번째 자격증 도전은 엑셀.
세 가지 중 제일 어려워 포기하고 그만두는 사람이 속출한다는 엑셀. 매번 엑셀 수업만 들어가면 수강생들이 그만두기에 맨 나중에 가르친다고도 말씀하셨다. 정말 그랬다. 나이나 젊었으면, 우스갯소리로 5살만 어렸어도 어찌해 보겠구먼,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는 둘째 치고라도 뭔 놈의 공식이 그리도 많은지, 또 버전이 바뀔 때마다 공식도 바뀌어 이전 버전, 새로 나온 버전을 모두 머리에 입력하려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말 포기하고 싶었다. 어려운 만큼 7주가 아닌 9주간의 텀을 두고 시험 날자를 잡았지만 그 9주란 날짜가 긴 시간이 아니었다. 이해 못 하는 수강생 한 사람 한 사람 교실 전체를 뛰어다니며 가르치다 보니 진도는 나갈 수 없었고 9번의 수업은 책의 절반도 배우지 못한 채 시험을 치러야 했다. 엑셀 시험 점수 결과는 내년 1월 2일에 발표를 한다. 지금 생각 같아선 세 가지 시험 중에 제일 잘 본 것 같은데 결과는 나와봐야 아는 것이므로 A등급을 희망하며 기다리고 있다.
타자도 느리고 컴퓨터에 문외한이었던 한글 시험 때에는 150% 연습했고, 파워포인트 시험 때에는 100% 연습하고 시험을 보러 갔는데 엑셀 시험 때에는 연습하고 싶어도 뭘 모르기도 했고 모르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여 연습을 많이 할래야 할 수가 없어 70% 정도 연습하고 시험을 보러 갔다. 시험은 3교시로 배정받아 11시부터 12시까지 한 시간 보는 거였는데 시험 보러 온 사람들이 그녀보다는 다들 어린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세명에 50대로 보이는 아저씨 아줌마들이지만 주눅은 들지 않았다. 두 명의 감독관은 앞, 뒤로 한 사람씩 시험 진행 과정을 지켜보았다. 시험이 시작되자 평온을 지키던 가슴은 긴장과 함께 두 방망이질을 시작했고 손은 왜 그리 떨리던지 큰 심호흡과 진정하느라 한참을 애먹었다. 앞서 두 번이나 치렀는데도 긴장감은 여전했으니 역시 시험은 시험인 가보다.
시험에 큰 의미를 두지 말자 자기 최면을 걸며 릴랙스 해 보려 많은 노력을 했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그렇게 쉽게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가 보다. 그동안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와 연습 말고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었고, 일주일에 한편씩 올리는 브런치글도 쫓기듯 써서 올리기에 바빴다. 뭐든 한 가지에 꽂히면 해내고 싶은 마음과 조바심에 다른 곳에 마음 둘 여유를 갖지 못한다. 일 순위로 올려둔 컴퓨터 시험이 본인 자신은 아니라고 되뇌었지만 실상은 생각과 달리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반년이라는 시간을 보냈고, 세 가지 시험을 모두 끝낸 지금은 이상스레 맥이 풀리고 아무 생각도 없는 것이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있으며, 팽팽한 긴장감의 텐션이 느슨해져서인가 감기몸살까지 와서 몸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다들 말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라고. 그녀가 느끼는 몸의 상태나 감정은 절대 그렇지 않다. 숫자가 늘어나는 것 만큼, 시간이 흐르는 것만큼 몸도 정신도 그 흐름 속에 묻혀 늙어가고 있다. 절대 그러고 싶지 않은데 생각은 짧아지고 행동은 느려져 스스로도 속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쩌겠는가? 세월의 흐름 속에 그 누구도 예외 없이(물론 시간차는 있겠지만) 늙음이라는 시간과 단어 속에 놓이게 된다. 각자 그 시간들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개개인의 숙제일 것이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 난 아직도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 내 나이가 어때서? 이 나이에 나 만큼 젊은 생각과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를 외치며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