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김치'라고 쓰고 '정'이라고 읽는다.
12월 김장철이다.
수년 전만 해도 12월 중순이 되면 여기저기, 이 집 저 집에서 김장한다는 소리와 함께 품앗이로 돌아가며 수다를 곁들여 김장을 하고 방금 버무린 김장 김치에 수육을 싸서 먹으며 하루종일 하하 호호 이웃, 친구들 간에 연례행사를 치르며 정을 돈독히 쌓았었다.
요즘도 예전처럼 생배추를 사서 절이고 씻어 물을 빼고 모든 양념거리를 다듬고 씻어 소를 만들고 버무려 김장 김치를 했다는 이야기를 바람에 묻어 실려가는 소리로 듣기도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절임배추가 나오면서 집에서 힘들게 절이고 씻는 행위가 생략되었다. 양념거리만 준비해 소를 만들어 절임배추가 배달되 오면 속을 채워 김치통에 넣으면 끝이다. 물론 양념거리를 사다 준비하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지만(요즘엔 양념 소도 따로 만들어 판다.) 생배추를 사다 절이는 과정이 생략되면서 한결 김장이 쉬워진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은 절임배추를 주문해하는 김장도 하지 않는 가정이 많아졌다. 김장을 사 먹는 가정이 늘어나는 이유는 편리함과 경제적인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김장을 직접 담그는 것보다 사서 먹는 것이 편리하고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어서다. 또한 사회적인 변화로 인해 가족 구성원이 줄어들고, 김장의 필요한 양이 줄어들면서 김장을 하는 가정이 줄었을 것이다. 김장 문화는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 중 하나이지만, 사회적인 변화와 생활 방식의 변화로 인해 그 형태와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그녀 역시 5~6년 전부터 김장을 하자 않는다. 김장이라 명명된 김치 담그는 연례행사는 물론 평상시에도 김치는 담그지 않는다. 김치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품질 좋은 김치를 제공하기도 하고, 아주 많은 다양한 종류의 맛있는 김치를 개인 취향에 맞게 양을 조절해 주문할 수 도 있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치를 담그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예전처럼 집에서 식사를 많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맛있는 간식거리와, 밖에서 먹는 외식 횟수가 늘면서 자연적으로 집에서의 식사가 줄기도 하고, (다른 가정들도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이가 들어감에 식사 양이 줄어든 것도 있다. 올해도 10Kg을 주문해 지정한 날짜에 문 앞까지 배달된 김치를 베란다에 3일 정도 숙성 한 뒤 김치냉장고에 정리해 둔 상태이다.
요즘 주부들 모임의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된 대화 내용은 김장이다.
지난주 모임에서도 김장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성당에 다니고 있는 '요세피나'는 올해도 매년 성당에서 하는 김장 봉사에 참여했고 그 김장김치를 샀다고 했다. 그녀도 3년 전 요세피나의 요청으로 그 김장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 양이 어마무시했다. 성당 다니는 교우들의 주문량을 포함해 이웃의 독거노인들과 김장이 어려운 이웃들의 나눔을 위해 하는 김치의 양은 성당 교우들 5~60명이 아침 8시 30분부터 시작한 김장이 12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힘들기는 했지만 뿌듯한 하루였는데 작년과 올해는 아르바이트 다닌다고 불러주지 않아 모르고 지나쳤다. 요세피나는 올해 성당에서 한 김치가 여느 해 못지않게 맛있게 됐다며 김장 안 하는 그녀에게 맛보라며 배추김치 한 통과 자신이 담근 총각김치 한 통을 건네주었다. 맛이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배추김치 한 잎을 손으로 쭉 찢어 먹어보았다. 와~~ 어쩜 그리 맛있던지, 총각김치는 또 어떻고...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가슴 뭉클한 게 뜨거워지는 뭔가가 느껴졌다. 그 많은 양의(500 포기) 김치를 하려면 몇 날 며칠 준비하는 과정도 보통 힘들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쪽파, 대파만 하더라도 수십 단이요(다듬고, 씻고, 썰고) 소를 만들 무 양 역시 가늠이 안 가는 양인 것을) 주부라서 알고, 다 해본 일이라서 더 잘 아는 힘듦인지라 고마움이, 요세피나의 마음 '정'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올해는 김장 재료 파종 이후 이상 기온 탓으로 인해 김장 재료들이 제때에 제대로 자라지 못해 양이 부족하여 김장 비용 가격이 많이 오를 것이라고 방송에 연일 보도 되었던 지라 올해 김장은 여느 해 보다도 비쌀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런 김장 김치를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로 맛보라고 주는 것을 보면 '정'이란 단어 말고는 따로 붙일 수식어가 없어 보인다.
뭉클함도 잠시, 입안 혀끝에서 느껴지는 맛있음에 끌려 앉은자리에서 그 김치 만으로 평소 양 보다도 넘치게 과식을 해버렸다. 이튿날도, 또 그다음 날 도. 사 먹는 김치도 물론 맛있지만(사 먹는 김치도 다 사람이 직접 담그는 것 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걸 다 직접 준비해 손수 담는 김치는 왜 맛이 다른지?, 담그는 사람의 정성, 마음, 정이 양념 보다 더 많이 첨가되어 그런 것이리라 생각한다. 김치 과다 섭취로 요세피나의 정이 배아픔으로까지 이여졌지만 김치를 다 먹어치우기 전에 사진으로나마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비워져 가는 김치통을 한 컷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