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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지금까지 잘 살았나 봐!!

by 여행강타

살다 보면 문득 되묻게 되는 게 있다.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게 맞을까? 나 지금 까지 잘 살아온 걸까?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물음에 쉽게 답하기는 어렵다. 살아온 날들을 내가 가장 잘 알면서도, 때론 가장 모호하게 느껴지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이 애매한 질문에, 언제부턴가 진짜 철이 들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나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잘아 갈 거야'라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살아왔다.


어버이날 하루 전 나를 다시 돌아보는 일이 있었다.

그날은 글쓰기 2분기 수업 첫날이었는데, 교수님께서 오리엔테이션 형식으로 앞으로의 강의 형태를 설명하셨고 각자 소개하는 것으로 수업을 마쳤다. 생각지 않은 여유 시간이 생겨 1년여간 가보지 못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집에서 차로 채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지만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니 1년이란 시간이 훌쩍 넘어 버렸다.


식당 사장 여자를 만나 알게 된 지가 15년이 되었다.

어느 날 아파트 상가 안 새로 운 식당이 문을 열었고, 우연히 들려 먹어 본 음식 맛이 좋아, 각종 모임을 그곳에서 했고, 입맛이 없을 때나, 몸이 좀 안 좋을 때 자주 이용을 하게 되었다. 이용하는 횟수가 늘면서 그녀와 나는 말 그대로 '단골'이상의 관계를 만들게 되었다. 볼 때마다 인사치레로 건네던 말들이 어느새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고, 몸이 아파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러 갈 때면 맛있는 음식으로 나의 건강까지 염려해 주는 사이가 됐다. 나 또한 그녀가 힘듦을 살짝살짝 비칠 때면 묵묵히 들어주고 약간의 조언을 해 줌으로써 서로의 삶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러다 그녀가 갑자기 식당을 닫아버렸다.

몇 개월 후 건너 건너 그녀가 다른 동네에 식당을 차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우연히 지나다 알게 된 것처럼 식당을 찾아갔다. 말하지 못하고 떠나온 미안함과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며, 여전히 힘들어하는 모습에 그저 그녀가 안쓰러웠다. 내가 해 줄게 하나도 없음에, 그저 생각날 때마다 찾아가 그녀가 해 준 맛난 음식을 먹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올뿐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점심시간이 얼추 끝나가는 시간이었다) 홀에는 한 팀의 손님들이 한참 식사 중이었고 그녀는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 중이었다. 나를 발견하고는 "어머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솔톤으로 반색을 한다. "잘 살고 있었어."라고 대꾸를 하고 다시 나와 근처 커피숍으로 가서 그녀가 좋아하는 커피를 사들고 다시 돌아와, 서로 그동안의 일들을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차 장사하는 사람 시간 너무 뺏으면 안 되지 하는 생각에 "나 이만 갈게" 하니 "잠시만여"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잠시 후 꽃집 사장이 카네이션 화분을 들고 들어왔고 그녀는 그걸 받아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순간 말이 막혔다. 뜻밖에 선물에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그녀에게 이런 화분을 받을 자격이 있지 아니한데, 그녀의 마음이 전해지니 고마움에 주저하며 받아 들고 돌아오는 길, 이런 생각이 슬쩍 들었다. '나 참 잘 살았나 봐!'.


사실 몇 해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 모임에서 내 환갑을 축하해 준다며 멤버들이 돈을 갹출하여 금 한 돈과 근사한 식당에서의 점심을 산 것이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 4명은 나보다도 한참이나 나이가 어린데, 점심이야 그렇다 쳐도 금 한 돈은 나를 무척이나 당황하게 만들었다. 고마움도 있었지만 어쩐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이웃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금값도 비싼데, 그런 걸 받다니 그간 인생 잘 살았네."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생각했었다. '정말 그런가? 나는 잘 살아온 게 맞나?'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피해 주지 않으려고 애썼고, 사람들과 진심으로 관계 맺으려고 노력했다. 새로 만나는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친해지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을 지니긴 했지만,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려 노력했다. 식당 여사장, 그녀와의 관계도 서로 같은 감정이기에 오래 유지되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녀에게 받은 카네이션 화분이, 누군가에게는 작고 흔한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그동안 잘 지내줘서 고마워요.'라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느껴졌다. 그 마음이 전해지니 가슴 한편이 따듯함을 넘어섰고, 자기 최면이 아닌 진심으로 '나 참 잘 살아왔구나!'를 돼 뇌인 하루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는 건 결국 마음뿐이라는 걸 작은 화분 하나로 다시 배우는 하루였다. 내가 살아온 날들이 그 마음을 만든 거라면,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내 남은 생도 '그동안 잘 살아왔어'라고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나 스스로게 할 수 있게 하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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