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지난 수요일 뜻밖의 틈과 마주했다.
정해진 시간표 속, 매주 기다리던 글쓰기 수업이 선생님의 건강 문제로 갑자기 취소되면서 생긴 시간이었다. 그날따라 집안일을 일찍 마무리하기 위해 몸을 분주히 움직이던 중이었다. 아침부터 연신 울려대는 카톡 소리에 휴대폰을 확인했고, 글쓰기 수업이 캔슬된 것을 알게 되었다. 지지난 주 수요일이 1분기 마지막 수업이었으나 선생님의 개인 사정으로 분기 마지막 수업을 한주 미룬 것이었는데 미뤄진 수업을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가 보내준 톡을 보고 조금은 황당함에 상황 파악을 해야 했다. 사람 아픈 것이야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반에서 반장역할을 맡고 있는 친구를 통해 듣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에 슬금슬금 짜증이 올라왔다. 그래서 엄한 친구에게 내 생각을 피력하던 중 단톡방에 7시 15분 선생님이 글을 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모든 단톡방은 무음으로 설정해 놓아 미처 알지 못했다)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본인 사정으로 한 주 미뤄진 수업, 그 분기 마지막 수업이 날아간 현 상황.
분기별로 모집되는 각 프로그램별로 정해진 인원이 있다. 그 인원보다 적으면 폐강이 되고, 인원이 많으면 추첨을 하는데, 사정상 등록을 못했거나 계속 듣고 싶지만 추첨에서 탈락되는 사람들은 어쩔 것인가? 나 역시 2분기 수업을 신청했지만 추첨에서 탈락되어 대기번호 2번을 받았다가, 신청 후 결제하지 않은 사람으로 인해 겨우 등록하게 된 사람 중에 한 사람인데, 금요일 대체 수업을 하겠다는 말에 더 황당함을 느꼈다. 글쓰기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모두 금요일을 비워두고 기다리는 상황이 아닐터인데, "나는 금요일 다른 수업이 있어 참석 못 합니다. 빠른 쾌유를 빕니다."란 딱딱한 내용의 글로 의사를 표현했다. 아마도 글에 실린 감정을 읽었으리라 짐작한다. 브런치에 매주 글을 올리는 입장에서 나의 글쓰기 수업은 빠질 수 없는 일주일 중 하루인데 유감이 아닐 수 없었다.
속은 쓰리지만 계속 속상해하고 있을 수많은 없는 일, 염두에 두고 있었던 일이 있었으나 포기하고 다음 기회로 미뤘던 일을 실행하기로 하고 제일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사실 난 4~5년 주기로 고양시에서 열리는 꽃 박람회를 보러간다. 올해 열리는 박람회에 가보기로 마음 먹었었는데 이래저래 많은 일들이 생기는 바람에 포기했었다.)
"우리 오늘 꽃 보러 갈래?". 친구는 망설이지 않았다. 30분 후 친구가 도착했고 우리는 고양시에서 열리고 있는 꽃 박람회장으로 향했다. 친구와 즉흥적으로 떠나는 평일의 나들이는 생각보다 더 즐겁고 특별했다. 한 시간 반을 운전해서 가는 길이 힘들지 않았고, 이야기가 끊이질 않으니 지루할 틈도 없었다. 임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셔틀버스로 박람회장으로 향하니 역시나 큰 행사답게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시끄럽거나 번잡한 느낌은 없었다. 모두가 꽃을 보며 조금은 천천히, 여유로운 하루를 누리는 것 같았다. 우리 또한 일산 호수 공원을 중심으로 조성해 놓은 박람회장을 천천히 둘러보며 마음 편안함과 즐거움으로 우리들만의 시간을 즐겼다. 꽃과 함께여서 좋았고 좋은 친구와 함께하니 더할 나위 없는 멋진 하루였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틈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내 삶을 들여다보다 나를 위해 시간을 마련해 주고 가보고 싶어 했던 곳을 방문하도록 허락해준 것 같았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고 마음속에서 포기했던 일을, 그것도 마음을 툭 터놓고, 조금의 거짓과 가면없이 속속들이 서로에 대해 모르는 바 없는 친구와 불시에 같은 마음으로 아름다운 하루를 보내게 해 준 틈.
글쓰기 수업이 취소된 건 분명 예기치 않은 일이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나는 정말 오랜만에 친구와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가보고 싶어했던 박람회에도 갈 수 있었다. 틈이 주는 선물은 언제나 예고없이 찾아온다. 그걸 잘 받아드릴 수 있다면, 그 속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순간들을 가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