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의 신기루, 그리고 현실
나의 어린 시절은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지평선 너머를 작은 나룻배로 표류하는 것 같았다.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면 속수무책으로 부서져버릴 것만 같은, 작디작은 나룻배였다.
기억 속의 나는 친척 집에 자주 맡겨졌고, 드물게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조차도 잦은 부부싸움으로 얼룩지곤 했다. 그럴 때면 손위 오빠와 함께 베란다에 이불을 깔고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시간을 견뎌야 했다. 유리창 너머로 들려오는 고성과 눈물은 어린 나에게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물론 내 유년 시절이 온통 어둡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부모님의 웃음소리와 함께 다가올 미래를 꿈꾸던 순간들도 분명 존재했다. 당시의 가족 모습은 아버지가 일을 하고 어머니는 집안을 돌보는 전형적인 외벌이 가정이었고, 여자아이들의 장래희망은 대부분 ‘현모양처’라는 단어 안에 갇혀 있었다.
그러던 1997년, 벼락처럼 IMF가 터졌다. 많은 아버지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그 충격은 곧바로 가정으로 전해졌다. 당장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들은 부엌을 나와 사회로 나갔고, 집안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 시절 명문대를 졸업할 만큼 머리는 참 좋았다. 하지만 현실을 몰랐고, 삶의 무게를 감당하는 데에는 서툴렀다. 그는 현실보다 허상을 좇았고, 언젠가 한 방에 인생이 바뀌리란 꿈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시절의 아버지는 마치 망망대해 위를 떠도는 항로 없는 배 같았다.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수평선 너머 어딘가에 있을 보물섬만을 믿고 무작정 노를 저었다.
그렇게 그는 날마다 경마장이라는 파도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었고, 조류를 거스르지 못한 그 항해는 결국 가족이라는 조각배까지 함께 휘청이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