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깊은 곳에 있던 나의 이야기
지금의 내 삶은 바다에 비유하면, 잔잔한 파도 위에 가끔씩 높은 파도가 밀려오는 정도다.
삶은 비교적 안정적이게 흘러가고 있으며 일상엔 웃음과 여유가 있다.
한때 삶을 등지려 했던 과거를 돌아보면서도, 그래도 살아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렇게 삶을 사랑할 줄 알게 되었고, 어려움 앞에서도 유연히 대처하는 법을 배우며 나름의 처세술도 생겼다.
이렇게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까지,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와 마주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어린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상처는 20대에 이르러서야 온전히 드러났다.
20대 중반 무렵, 나는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상처가 겉으로만 아물어 있는 채, 속에서는 곪아 터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겉으론 성인이 되었지만,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어린 날의 상처들은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채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종종 밝고 에너지가 넘치며,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곤 했다.
친구들은 나를 태양 같다고 했다.
늘 웃고 있고, 분위기를 띄우며,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사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나 자신이 그렇게 단단하고 빛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과거의 상처 따위는 이미 다 지나간 일이라 여겼고, 이제는 나를 괴롭히지 못할 만큼 작아진 줄로만 알았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남들에게 보이는 밝고 강한 모습이 진짜 나라고, 이미 다 이겨낸 사람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점점 알 수 없는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설명되지 않는 슬픔, 이유 없는 무기력감, 깊은 밤 갑작스레 밀려오는 외로움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가령, 아무렇지 않은 하루.
특별한 일이 없는 평온한 일상 속에서도 문득 삶이 버겁고, 모든 것이 지겹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그럴 때면 그런 감정들은 마치 심해의 물살처럼 나를 아래로 끌어당겨, 폐부를 짓누르고 숨조차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감정의 근원을 찾기 위해 처음으로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의 시작을 따라 과거의 기억을 꺼내 주었고, 나는 의지와는 다르게 멈추지 않는 눈물에 당황했다.
감정의 트리거가 당겨진 순간, 물이 솟아오르듯 망각했던 감정들과 고통들이 넘쳐오르기 시작했다.
진료실 안에 있는 곽티슈 한 통을 모두 쓰고 나서야 내 눈물은 겨우 멈췄고,
결국 나는 그때 처음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 상처들이 무엇인지 똑바로 보기 위해서는 잊으려 애썼던, 잊었다고 믿었던 과거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