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문화생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조 Apr 25. 2023

영화를 위한 황금빛 헌사

영화 <바빌론>

정말 우연하게 이 영화에 대해 알게 되었고, 별 기대도 관심도 없이 그저 브래드 피트와 마고 로비가 주연으로 나온다는 사실 하나만이 날 영화관으로 이끌었다.

사실 영화의 진주인공은 사실 브래드 피트나 마고 로비보단 디에고 칼바가 연기한 마누엘 토레스였다.
더 크고 중요하고 영원한 것의 일부가 되고 싶어

주인공 매니(마누엘)는 영화사 사장인 월락이 주최하는 마약과 섹스가 난무하는 할리우드 광란의 파티 속에서 잡심부름을 하는 영화를 동경하는 청년이다.

동시에 당대 할리우드 대스타로 모든 사람의 관심을 집중시키며 들어오는 잭 콘레드와 초대받지도 않았지만 능청스럽게 들어와 엄청난 끼를 발산하며 파티의 중심이 된 배우지망생 넬리 라로이도 함께 비춰준다.

영화의 세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이유와 목적으로 파티장에 들어섰지만 점차 하나씩 연결되어 각자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펼쳐진다.

파티장면에서 자신의 끼를 맘껏 뽐내며 스타들과 그들의 영역에 들어가 어색함 없이 본인을 어필하는 넬리를 신기한 듯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매니의 표정에서 약간의 동질감을 느꼈다. 나도 매니처럼 늘 하고 싶었던 건 많았지만 그걸 시작하기까지가 오래 걸렸고 또 중간에 멈춘 적도 다수였다. 그런 넬리를 바라보며 매니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파티가 끝난 후 매니저에게 뭐든지 열심히 할 테니 다른 일자리가 있는지 묻기도 하였고 후에 잭 덕분에 영화세트장에서 일할 때도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발로 뛰며 촬영을 도왔다.

매니의 노력으로 탄생한 잭의 언덕 키스신은 음악과 더불어 정말 경이로운 명장면이었다.

영화 제작자로 갈수록 승승장구하는 매니와는 달리 잭과 넬리는 무성영화 시절이 가고 유성영화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적응을 못하며 입지가 나날이 줄어든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잭은 본인을 비판한 기자 엘리노어를 찾아가 바퀴벌레라며 욕을 하지만 엘리노어는 이에 집에 불이 나면 음지에 숨어 사는 바퀴벌레들은 살아남지만 죽는 건 당신들이라며 현실을 말해준다. 그러고는 나름의 위로를 건네주는데,

당신이 죽어도 당신이 나온 영화를 재생하는 순간, 당신은 그 안에서 몇 번이고 살아날 거예요. 50년 후의 아이들에게도 친구 같은 존재가 되겠죠.


이 대사를 보며 난 느꼈다. “아! 영화 해보고 싶다! “ 영화감독이나 영화배우나 각본가나 무대미술가나 뭐든 해보고 싶었다. 영화의 감독인 데미언 샤젤 못지않게 나도 영화와 음악에 열광한다. 혼자 문득 영화각본이 떠오르기도 하고 특정 음악을 들으며 “아 이 음악은 이런 장면에 쓰이면 좋겠다.” 라며 나만의(?) 영화를 아주 잠깐이나마 구상하곤 한다. 그렇다고 또 현재 내가 전공으로 하고 있는 미술계열이 하기 싫은 건 아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감상하고 있으면 그 순간에 몰두해 다른 잡생각들이 멈추며 나만의 작품을 완성하면 그 성취감 또한 엄청나다.

가끔 만약 내가 미술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뭘 했을까 생각하곤 하는데 난 음악도 정말 좋아하기에 밴드에 들어가 음악을 했을 거라며 답을 던지곤 했다. 허나 변덕스러운 나이기에 도중에 영화계열로 발을 옮겼을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미술, 음악, 영화에 열광하는 걸 보면 확실히 예술이라는 맞는 옷을 입었구나 생각한다.


데미언 샤젤은 이 영화를 약 15년 전부터 구상했지만 당시에는 본인이 아직 무명이었고 아무도 영화 제작에 나서지 않을 거라고 판단하여 위플래시와 라라랜드를 먼저 내고  바빌론의 스토리를 좀 더 자신 있게 다듬어 촬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렇듯 감독의 열정이 녹아든 작품이지만 호불호가 심하게 갈려 안타깝게도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혹평을 던진 사람들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좋게 평가했는데,

극 중에서 시간이 흘러 새 가정을 꾸린 매니가 오랜만에 할리우드를 방문해 추억에 이끌려 한 극장에서 극중극 형식으로 들어간 1952년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를 관람하는데 유성영화의 발전에 적응하지 못한 등장인물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장면을 보며 다른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리지만 매니만이 옛 생각에 눈물을 흘린다. 그러고는 강렬한 섬광과 영화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움직이는 말>과 함께 영화의 기술적, 표현적 발전에 기여한 명작들인 <오즈의 마법사>, <싸이고>, <트론>, <터미네이터 2>, <쥬라기 공원>, <매트릭스>, <아바타> 등의 영화 장면들이 몽타주로 지나가고 눈물을 흘리다가 환희의 웃음을 짓는 매니의 얼굴로 영화는 끝이 난다.

움직이는 말 (1878)
오즈의 마법사 (1939)
싸이코 (1960)
트론 (1982)
터미네이터2 (1991)
쥬라기 공원 (1993)
매트릭스 (1999)
아바타 (2009)

영화의 초반부에 나온 매니의 포부처럼 그는 결국엔 크고 중요한, 영화처럼 영원한 것의 일부가 되었다. 초반부터 매니에게 동질감을 느껴 나 자신을 투영해 영화를 관람하고 매니의 성공을 목격하니 나에겐 이 영화가 불호가 아닌 ‘호’로 다가왔나 보다.


나의 최종 목표가 뭐냐고 학창 시절부터 귀에 박히게 들어왔다. 과거엔 어린 마음에 호기롭게 말도 안 되는 직업들을 대답으로 했겠지만 지금의 내 생각은 “굳이 구체적으로 목표를 잡고 살아갈 필요가 있나? ”이다.

초벌그림이 스케치가 되고 스케치가 작품으로 완성되듯, 처음 느낀 모호한 생각들을 다듬어가며 그리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그 최초의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가며 그 목표는 더 명확해질 것이고 속도는 더딜지언정 확실하게 성취될 것이다.

“넌 어쩔 생각인데 에드?” 내가 물었다.
“모르겠어.” 그가 말했다. “그냥 살아가는 거지 뭐. 인생을 음미하면서. “

-소설 길 위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모두는 길 위의 부랑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