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길 위에서>
다소 널디한 기질이 다분했던 내가 십 대 때부터 좋아했던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톰 웨이츠가 젊은 시절 영향을 받았다던 소설 ‘길 위에서’를 읽어 보았다.
So goodbye, so long, the road calls me dear.
And your tears cannot bind me anymore,
And farewell to the girl with the sun in her eyes
Can I kiss you, and then I'll be gone.
톰 웨이츠의 ‘Old Shoes’
1949년생인 톰 웨이츠는 젊은 시절 당대 미국의 비트닉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수밖에 없다. 그는 실제로 비트세대의 선구자이자 히피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작가 잭 케루악의 열렬한 팬이었는데 역마의 기질이 다분했던 그는 잭 케루악의 소설 ’ 길 위에서‘를 읽고 열여덟 살 때부터 맘 맞는 친구와 캘리포니아 주에서 애리조나 주까지 히치하이킹을 하고는 하면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그리고 1971년, 근처에 있는 트루버도어라는 유명한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프랭크 자파의 매니저였던 허브 코언의 눈에 띄어 데뷔를 했다.
톰 웨이츠의 데뷔앨범 ‘Closing Time’은 전곡을 다 들어보길 추천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대체 어떤 책이기에 당대 미국의 젊은이들을 길 위로 내세웠는가 궁금해졌다. 잭 케루악은 처음 이 소설을 탈고했으나 지나치게 실험적이고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부당해 6년 후에야 출판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분명히 알 것 같았다. 이 전 읽어보았던 책들과는 너무나 다르기에 초반 몇 장을 읽어보았을 땐 솔직히 글이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고 지루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을 집필할 당시 약 3주 만에 여러 종이들을 이어 붙인 긴 두루마리 종이띠를 타자기에 꽂아 스트레이트로 썼다고 한다. 덕분에(?) 잘 다듬어지지 않은 자유로운 문체가 매력적으로 다가오긴 했다.
소설의 간략한 내용은 작가 본인을 녹여낸 주인공 ‘샐 파라다이스’가 자유분방한 친구 ‘딘 모리아티’를 만나 수중의 돈 몇 푼 만을 가지고 히치하이킹을 통해 미국 동서부 전역을 가로지르며 겪게 되는 이야기에 대한 내용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불행한 인물들이다. 주인공 샐은 아내와 이혼 후 상처와 상실감을 지닌 젊은 소설가이고, 딘 모리아티는 누군지도 모를 본인의 아버지를 찾아다닌다. 또 그들의 여자 메릴루는 마음 둘 곳을 못 찾는 매춘부이다. 이런 불행한 이들이 써 내려가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암울하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자유와 해방을 그토록 갈망하며 방황을 하는 모습이 현대사회인들이 안정적인 삶을 위해 죽기 살기로 고군분투하는 모습과 대조되어 흥미로웠고 내게도 많은 질문을 던졌다.
책은 언제 읽느냐에 따라서도 다른 느낌을 준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고등학교 1, 2학년 때 즈음인 것 같은데 그때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전혀 공감 안 되는 미국의 자유분방한 문화, 자연스러운 마약과 섹스, 그들이 열광하는 비밥재즈까지, 개연성이나 전개가 다소 황당해서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진도가 안 나가 먼지만 쌓여가던 책을 몇 년이 지나 군대 제대 후에 다시금 꺼내 읽어 보았는데 (물론 공감이 어려운 건 여전하지만) 주인공들의 사연에 마음이 가고 그들의 문화가 흥미롭게 다가와 다음 장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책이 되었다. 겁이 나 삐딱선 하나 타지 않았던 학창 시절의 나는 샐과 딘의 행보가 부정적으로만 느껴졌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기에 지금의 내가 샐과 딘의 모습을 보며 일종의 대리만족처럼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할리우드의 주차장 뒤편에 있는 낮은 시멘트 담 위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내가 이 웃기는 작업을 하느라 낑낑대는 동안 할리우드 시사회의 눈부신 조명은 윙윙거리는 소음을 내는 저 서해안의 어두운 밤하늘을 꿰뚫고 있었다. 주위는 황금 해안에 위치한 광기의 도시가 뿜어내는 온갖 소음으로 가득했다. 이것이 할리우드에서 내가 할 일이구나. 할리우드에서의 마지막 밤, 나는 주차장의 공중변소 뒤쪽에 앉아 무릎 위에 올려놓은 빵에 머스터드를 바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