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스물 한 번째 이야기
부서를 이동한 지 1년이 지나자, 나는 새로운 업무를 어느 정도 익히고
그동안 문제였던 부분들을 하나씩 개선해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또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
"쉬운 업무로 가서 좋겠네"라는 누군가의 말에 오히려 기분이 상했다.
새로운 업무는 겉으로 보기에 단순해 보여도, 내부 규정, 규칙, 예산 전반을 꿰뚫고 있어야 하는 자리였다.
업무 초반은 낯설고 힘들었지만, 다행히 난이도가 높은 일은 아니었고 곧 익숙해졌다.
입사 초반부터 복잡하고 까다로운 업무를 맡았던 덕분에, 새로운 업무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새로운 사무실에는 나 외에 두 명의 직원이 있었다.
한 명은 연세가 있는 책임급 직원, 다른 한 명은 나와 동갑인 직원이었다.
동갑인 직원과는 이전까지 업무의 접점이 전혀 없어서 처음엔 낯설었다.
그리고 그 당시 나는 여전히 회사 사람들에 대한 불신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상태였다.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었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질문을 하면 늘 겸손하고 성실하게 답해주었고,
그 모습에 나는 점점 경계를 풀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단순한 동료를 넘어 좋은 친구가 되었다.
나는 내 어두웠던 과거를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와는 가능한 한 밝고 좋은 이야기들만 나눴다.
한편, 내가 맡았던 이전 업무의 후임자는
이미 충분한 가이드라인을 전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나에게 인수인계를 요청했고, 전화를 자주 걸어왔다.
그는 선임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예의를 지키려 했다.
직접 그의 자리까지 가서 시스템 사용법을 시연하며 설명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내가 업무를 처리하는 방법을 시연 하고 있는 도중에 그는 사적인 전화를 받았다.
잠시 설명을 멈추려 했더니, 그는 고개로 "계속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기분을 강하게 느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그의 자리에는 더 이상 가지 않았다.
이후부터는 오직 전화나 메신저로만 필요한 설명을 전달했다.
결국 그는 그 업무가 하찮다고 느꼈는지, 회사와 거래하던 외부 업체에 모든 업무를 넘겨버렸다.
그리고 나는,
내가 1년 동안 온 힘을 다해 싸워가며 바로잡았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전임자로서 이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실장에게 직접 찾아가 해당 사안의 심각성을 설명드렸다.
하지만 실장은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A 선임의 무리로부터 또다시 “나댄다”는 비아냥이 들려왔다.
그렇게 그 업무는 지금까지도 외부 업체 주도 하에 운영되고 있다.
내가 애써 바로잡으려 했던 노력은, 그렇게 흔적 없이 덮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