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그리스로마신화 시리즈 <안트로폴리스>, 두 번째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mgDqywvkU8
<안트로폴리스2 – 라이오스>를 관통하는 문장이 있다.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이 말은 장기하, 크리시포스, 눈먼 예언자를 통해 총 세 번 반복된다. 첫 번째 청취자는 하우스음악을 들으며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관객이고, 두 번째는 왕을 떠받드는 시민이며, 마지막은 교만한 왕 ‘라이오스’다. 이 세 존재는 공연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이자, 왕좌를 오매불망 바라보고 있다는 교집합을 공유한다.
돈을 내고 공연장까지 찾아온 관객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다소 뜬금없는 잔소리는 라이오스의 궤적과 맞닿아 있다.
테베의 유일한 혈통인 라이오스는 왕위 싸움으로 숲속에 버려져 죽을 위기에 놓였으나, 이웃나라 왕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 그러나 이 과거는 비밀로 남아 있다. 라이오스는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던 어린시절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를 표하지도 않는다. 빛나는 왕좌를 가진 현재에만 집중한다. 왕이 되는 날, 라이오스는 말한다.
“나는 신이 빚은 최고의 창조물이다. 신들이 인정하든 말든.”
“나는 통치자고, 여러분은 내게 통치당하는 존재다.”
라이오스가 연설하는 동안 무대 천장에 달린 카메라는 그를 독특한 구도로 촬영하고 있다. 90도로 내리꽃는 것 같은 하이 앵글 숏. 라이오스의 정수리는 무대 뒷면의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다. 젊은 왕 라이오스는 자신이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는 줄 알았겠지만, 사실은 가장 취약한 부분을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있다. 라이오스가 뒤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정수리를 쳐다본 유일한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는 사람이다. 정수리 숏은 라이오스의 건방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신의 소리 없는 경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권력자의 민낯은 만천하에 드러날 것임을 시사하는 것에 가깝다.
‘너는 아들의 칼에 죽임당하고 부인도 뺏기리라.’
라이오스는 어느 노파가 전해준 신의 예언을 두려워하며 신경질적으로 노쇠해 간다. 그러다 예언 그대로 자신이 버린 아들 오이디푸스에게 베어진다. 최후의 순간, 계단에 걸터앉아 있는 라이오스 위로 초록색 페인트가 왈칵 쏟아지고, 카메라는 하이 앵글로 그 모습을 담아낸다. 라이오스는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카메라의 존재를 알아챈다. 그러나 노려보기만 할 뿐 어떠한 분풀이도 할 수 없다. 카메라는 무력하게 죽어가며 관객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높은 왕좌에서 추락해버린 그를 있는 그대로 조명한다. 평가는 신이 아닌 관객의 몫이다. 연출이 선정한 세 명의 전령사(장기하, 크리시포스, 눈먼 예언자)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우스음악으로만 존재하거나, 라이오스의 어리고 수동적인 연인, 혹은 물리적으로 높은 왕좌를 바라볼 수 없는 맹인으로 철저한 제삼자임에도 불구하고 극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라이오스를 괴롭게 만든 신의 예언 역시 노파의 입을 통해 전달된 것에 불과하다. 신은 침묵하고, 인간은 발화한다. 높은 것은 강해 보이지만 땅을 단단히 지탱하는 현실과는 분리되어 있다. 실체 없는 예언이나 권력자의 정수리처럼.
<안트로폴리스2 – 라이오스>의 시각은 명확하다. 모든 비극은 신의 형벌이 아니라 운명에 매몰되어 스스로 초래한 재앙이다. 믿지 않았다면 거짓으로 그쳤을 노파의 말에 아들을 내다버린 라이오스처럼 말이다.
무언가 간절히 손에 쥐고 싶어질 땐 라이오스의 초록빛 얼굴과 함께 장기하의 목소리를 떠올려 보자.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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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UTS Editor 피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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