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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view 09.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에 목숨 건 인간

by 도순
스크린샷 2025-06-01 오후 1.38.56.png 사무엘 베케트

“If I knew, I would have said so in the play.”
(알았다면, 내가 극에 썼을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했던 말이다.

무슨 뜻일까? 무대로 돌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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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나무 밑에 두 노인이 있다. 시종일관 만담만 주고받는 그들에게서 관객이 얻어낼 수 있는 정보는 하나뿐이다. 바로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이제 가자.” “고도를 기다려야지.” “아, 맞다.”


반복되는 대사를 듣고 있자면 씻을 수 없는 궁금증이 증식하기 시작한다.


‘고도’가 누구지?


관객들의 호기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고도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이야? 그래서 고도가 뭔데?’ 혼돈에 빠질 무렵 고도 밑에서 일하는 소년이 등장한다.


“고도 씨는 오늘 오지 않아요. 하지만 내일은 오실 거예요.”


확신 어린 말에 두 노인과 관객은 다시금 희망을 품고 그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2막에 재등장한 소년은 마치 기억상실에 걸린 것처럼 두 노인을 모르는 체한다. 분명 여기 오지 않았었느냐는 호통에도 모르쇠 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고도 씨는 오늘 오지 않아요. 하지만 내일은 꼭 오실 겁니다.”


두 노인은 여전히 큰 나무 밑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한 노인이 묻는다. “고도가 오지 않으면 어쩌지?” 다른 노인은 대답한다. “저 나무에 목이나 매달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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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에 초연된 <고도를 기다리며>는 혼란 그 자체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 극을 오마주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라는 코미디극의 포스터에는 이런 대사가 적혀 있을 정도이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요!”


관객들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고도가 뭐냐고 웅성거리면서도 그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열렬히 몰두한다. ‘고도는 신이다. 고도는 권력층이다. 고도는 기다림 그 자체이다.’ 다양한 해석이 등장하고 또 사라졌다. 정답은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고도를 기다리며>는 2025년에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불확실성을 돌파하려고 드는 인간의 습성 때문이다.


몇백만 년 전, 먹지 못하면 죽었던 인류의 조상에게 ‘모호함’이란 생사를 가르는 두려움이었다. 이러한 생존 불안은 뼛속 깊이 새겨져 배부른 인구가 과반수를 넘긴 지금까지도 전승되어 왔다. 이제 굶어 죽는 것은 사전적 정의에 머무르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규명하지 못한 영혼은 바싹 말라 스스로 생을 내던지기도 한다. 불안에서 탈피하기 위해 명확성을 찾아 헤매는 인간에게 세상은 베케트처럼 무책임한 대답을 내놓을 뿐이다. ‘삶이 뭐냐고요. 낸들 알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생이 또렷해질 그 어느 날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고도가 오지 않으면 목을 매겠다는 두 노인처럼 절절하게.


베케트는 고도가 무엇인지 모른다. ‘고도’란 ‘Godot’이라는 원문 단어를 한국의 발음 기호로 치환한 것에 불과하며 Godot에도 정확한 의미는 부여되지 않았다. 하지만 고도로 정교한 인생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그 말은 중의적인 표현으로 읽힌다. 내일이 되면 반드시 고도가 온다는 소년의 약속은 사실일까? 알 수 없다. 그러나 알 수 없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인생은 모호한 개념의 집합체이며 돌발의 연속이기에 형체를 갈구할수록 불안의 구렁텅이로 미끄러질 것이나, 그래서 도리어 유연한 것이다. 고도처럼 말이다.


삶은 불분명하다. 이 어두운 터널에서 고도를 기다릴 것인지, 더듬거리며 떠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소년의 약속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을 믿어야 한다.


공연장을 나서는 길, 베케트가 떠넘긴 폭발적인 모호함 속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자유를 느꼈다. 목적주의적 인생에 지쳐 있다면, 한 번쯤은 베케트의 무책임한 실존주의를 피부로 느껴 보자. 공연장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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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UTS Editor 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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