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우주의 사이에서 —『사람을 안다는 것』을 읽고
1. 서문 ― ‘이해’라는 이름의 오해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난 그 사람을 잘 알아.”
그 문장은 말하는 사람에겐 안도감을 주고, 듣는 사람에게는 때때로 무심한 경계를 만든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문장의 무게가 불편했다.
사람이 사람을 완전히 안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
어떤 이는 함께한 시간이 곧 이해의 깊이라 믿고,
어떤 이는 그 사람의 성격, 기호, 습관을 기억하는 것으로 친밀함을 정의한다.
하지만 나는 수없이 겪어왔다.
친한 친구의 의외의 말 한마디에 멍해지고,
가장 가까운 이의 눈빛에 낯설음을 느끼고,
심지어는 나 자신조차도 알 수 없을 만큼 낯선 순간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 질문에 다시 불을 붙였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이 책에서 말한다.
관계를 이끄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고.
사람을 이해하는 건 꿰뚫어보는 능력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세계 앞에 조용히 머무는 존재의 자세라고.
그 말은 단순했지만, 오래도록 나를 머물게 했다.
나는 그 문장을 곱씹으며 깨달았다.
내가 누군가를 “이해했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그 사람의 확장 가능성에 눈을 감고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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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첫 번째 전개 ― 우주라는 내면, 그리고 그 경이로움
사람의 내면은 작지 않다.
그건 하나의 방도, 하나의 거울도, 하나의 기록장도 아니다.
나는 그것이 하나의 우주라고 믿는다.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들이 떠 있고,
언제 태어났는지 모를 감정이 행성처럼 궤도를 돌며,
어떤 기억은 이미 사라졌는데도 미세한 중력을 남긴 채
그 사람의 마음속을 조용히 끌어당긴다.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그 우주의 일부만 보고도 “이제 다 알겠다”고 말해버린다는 데 있다.
우리는 상대의 습관과 반응 패턴만 보고,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단정지은 뒤,
더 이상 그 사람의 우주에서 새로운 별이 태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이러한 단정의 습관을 부드럽게 깨뜨린다.
브룩스는 말한다.
사람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함을 받아들이는 일이야말로,
이해의 출발점이라고.
나는 그 말을 읽으며,
내가 오래 안다고 믿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질문을 멈춰버린 관계들.
‘이 사람은 원래 이런 성격이니까’라는 이유로
내 호기심을 꺼버렸던 순간들.
또한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갇힌 채,
내 변화 가능성을 보여줄 수 없었던 관계들.
이해는 닫는 것이 아니라 여는 것이다.
우주는 여전히 흐르고 있는데,
나는 그것을 정지된 상태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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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두 번째 전개 ― 이해라는 이름의 거리, 머무름이라는 용기
그렇다면 진짜 관계란 무엇일까?
나는 한동안 ‘관계는 조율’이라고 믿었다.
서로의 온도를 맞추고, 말투를 조정하고, 감정의 속도를 비슷하게 하는 것.
그러나 브룩스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정말, 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말은 나를 잠시 멈춰 세웠다.
나는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정작 상대의 슬픔 앞에서는 너무 쉽게 말을 꺼냈다.
위로라는 이름으로 조언을 내놓고,
공감이라는 명목으로 ‘정답’을 제시했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었을까?
책 속에서 한 여성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이가 고통 속에 빠졌을 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자리를 지켰다.
브룩스는 말한다.
그 침묵은 무능력함이 아니라,
관계를 위한 용기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그 장면을 읽으며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했다.
누군가가 내 곁에서 힘들다고 말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그 옆에 머물렀는가?
아니면, 나의 불편함을 감추기 위해
조언과 격려라는 가면을 씌우며 도망친 건 아니었을까?
이해는 말의 정확함이 아니라,
그 사람 곁에 있는 몸의 온도로 시작된다.
그건 머무는 용기이고,
견디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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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 번째 전개 ― 비유에서 풍경으로, 너와 나의 거리
나는 ‘우주’라는 비유를 좋아한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우주만큼 멀고 광활한 것은 아니다.
어떤 관계는 산책길처럼 단순하고,
어떤 마음은 강물처럼 흐르다가 잔잔해지기도 한다.
나는 한때 어떤 사람을 아주 오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의 기분을 읽는 법도 알고 있었고,
무엇에 민감한지도,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그 사람이 내 앞에서 울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는 그 눈물 앞에서 너무 작아졌다.
아는 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의 마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고,
그 복잡함 안에는 내가 모르는 ‘그의 역사’가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이해하려고 한 사람’이 아니라
‘이해했다고 믿어버린 사람’이었다는 걸 알았다.
관계란 결국,
상대를 설명하지 않고도 곁에 있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곁에서, 나의 우주도 조금씩
다른 모양의 별을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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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론 ― 이해의 본질은 기도처럼
브룩스는 이 책을 통해
결국 사람을 안다는 건, 그 사람의 변화 가능성을 끝까지 지켜보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 말은 나에게 깊은 울림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미완의 존재다.
오늘과 내일의 감정이 같지 않으며,
말투도, 선택도, 고통도 달라진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나는 이제 말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원래 이런 사람이잖아.”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요즘 너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건너고 있어?”
그건 상대에게 건네는 질문이기도 하고,
나 자신에게 묻는 말이기도 하다.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은,
끝내 닿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다시 손을 뻗는 기도다.
나는 그 기도를, 오늘도 조용히 배워간다.
조언 없이 머무는 법을,
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물러나는 겸허함을,
그리고 상대의 우주가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감각을.
어쩌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도받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우주를,
설명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