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
요즘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아 종이의 질감을 느끼고, 연필을 굴리고, 단어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새긴다.
피곤해질 줄 알았는데, 몸이 가벼워졌고 지루할 줄 알았는데, 머리가 맑아졌다.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생활에 다시 리듬이 생겼다. 생각보다 훨씬 더 생기 넘치는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다시금 알게 되었다. 집중은 안식이다. ‘해야 한다’는 부담이 아니라, ‘머물고 싶은 곳’이란 뜻이라는 걸.
나는 자주 오해한다. 집중이란 힘겨운 노력의 결과라고.
하지만 진짜 집중은, 그 안에서 나 자신이 잠시 사라지는 일이다.
끊임없이 판단하고 해석하며 스스로를 피로하게 만드는 자의식.
그걸 잠깐 멈추게 해주는 공간이 집중이다.
그래서 몰입은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다.
무언가에 푹 빠진 사람의 얼굴이 편안한 이유도, 어쩌면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상태가 우리를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나는 집중하려 애쓰기보다 잡념을 없애려 애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잡념은 없애는 게 아니라, 비워지는 것이다.
집중할 대상이 생겼을 때, 그 자리를 조용히 떠나는 것.
억지로 밀어내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이다.
최근의 나는 이걸 조금은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머릿속이 복잡할수록,
답은 더 단순하고, 더 손에 잡히는 곳에 있다.
통제할 수 없는 고민,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생각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대신,
내가 직접 움직일 수 있는 영역에 힘을 써보기로 했다.
지금의 나는 화려한 말장난보다는 실질적인 것들에 더 마음이 끌린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어제보다 한 문제라도 더 풀기. 같은 문장을 다시 써보기.
몸을 움직이고, 일에 집중하기.
그런 것들이 내 하루를 다시 살아있게 만들고,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회복된다.
예전에는 몰랐던 사실 하나.
잡념이란 ‘무언가에 몰두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
그것은 우리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이제는 다시 집중할 때야”라고 말하는 신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진짜 집중은, 언제나 크고 반짝이는 것 속에 있지는 않다.
조용하고,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 집중은 숨어 있다.
나는 그 작은 리듬 안에서 다시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안다. 집중이란 거센 파도를 타는 기술이 아니라, 잔잔한 물살에 몸을 맡기는 일이라는 것을.
무언가를 움켜쥐는 행위가 아니라, 흐름을 따라 나를 잃지 않는 방식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