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란

모모후기

by 다크브라운

1. 시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과 감정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고 말한다. 그의 유명한 비유처럼, “뜨거운 난로 위에 손을 올려두면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1시간은 1분처럼 느껴진다.” 같은 60초라도 그것을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의 상대성은 『모모』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회색 신사들은 시간을 절약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속삭이지만, 정작 그들이 가져간 시간은 사람들의 여유, 관계, 그리고 삶의 의미를 갉아먹는다. 반면 모모는 시간을 관리하거나 쪼개지 않고, 순간에 몰입하며 그것을 온전히 경험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시간을 경험하고 있을까?


2. 회색 신사와 우리가 잃어가는 시간

『모모』에서 등장하는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말한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효율적으로 살아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너는 네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있나?”

이 말들은 어딘가 낯설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간다.

업무는 더 빠르게, 더 많이.

쉬는 시간도 의미 있게, 자기계발을 하며.

여유가 있으면, 더 생산적인 일을 찾아야 한다.

시간을 아낄수록 삶이 나아질 것 같지만, 회색 신사들이 가져간 것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삶의 본질’이었다. 그들이 훔쳐간 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경험, 그리고 사랑하는 것과 함께하는 순간들이다.

그러나 회색 신사들의 정체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은 단순한 악역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만들어낸 존재들이다.

우리는 ‘타인의 기대’라는 회색 신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진 않은가?

우리는 효율성과 성과를 쫓다가 ‘내가 원하는 시간’을 빼앗기고 있진 않은가?

사실 회색 신사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존재다.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들은 우리 삶을 지배할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다.


3. 사랑하는 것과 함께하는 시간의 의미

회색 신사들이 훔쳐가는 시간은 단순한 시계 위의 숫자가 아니다. 그들이 빼앗아가는 것은 우리의 내면과 연결된 시간, 즉 사랑하는 것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것’의 의미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사랑하는 태도를 이야기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을 떠올린다. 하지만 시간의 충만함은 반드시 ‘사람’과만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은 다양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일에 몰두하는 시간이 가장 충만한 순간일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독서, 음악 감상, 사색, 혹은 창작의 순간이 가장 깊은 몰입을 경험하는 시간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이 내 의식과 함께 흐르는가?이다.

시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대상과 몰입하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참 동안 구름을 바라보는 순간 행복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충만한 시간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피아노를 치며 온전히 음악과 하나 되는 순간이 있다면, 그 시간이야말로 진정으로 살아 있는 시간이다.

우리는 종종 시간을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나누지만, 사실 가장 쓸모없는 시간들이 우리를 가장 깊게 만들어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모모』에서 강조하는 시간의 본질은, 단순히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가에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4. 효율성과 충만함의 균형 찾기

그렇다면 우리는 무조건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야 할까? 『모모』가 말하는 것은 단순한 ‘비효율성의 찬양’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드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효율성과 충만함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해야 할 일을 먼저 끝내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이후의 시간에서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어떤 사람은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해야 할 일이 끝나야만 여유를 찾는 태도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설계하는 방식을 찾는 것이다.

누군가는 계획적으로 시간을 운영하는 것이 행복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자유롭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행복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내 기준에서 시간을 사랑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다.


5. 결론: 내 삶에 시간이 어떻게 깃드는가?

『모모』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

“네 시간은 어디에 깃들어 있는가?”

시간이란,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채우는 방식이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의미를 찾고,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만의 몰입 속에서 충만함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자연을 바라보는 순간 속에서,

어떤 사람은 책 한 권을 읽는 순간 속에서 시간을 경험한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시간을 많이 쓰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이다.

나는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나는 어떤 순간에서 가장 나다움을 느끼는가?

나는 무엇과 함께할 때 가장 충만한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시간을 사랑하는 태도가 아닐까.

시간을 아메리카노에 비유해보고 싶다. 우리는 종종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시간을 빠르게 들이키고,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에 묻혀 그 순간의 깊이를 놓쳐버린다.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때로는 시간의 째깍거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을 사랑하는 태도란, 뜨거운 커피를 앞에 두고 자연스럽게 식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너무 서두르면 그 온기를 느낄 수 없고, 너무 오래 방치하면 처음의 풍미를 잃는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조급하게 쫓지 않고, 그것이 우리 곁에 머무르는 동안 천천히 음미하는 일이다. 한 모금 머금을 때마다 그 온도가 변하듯, 시간도 그렇게 우리의 삶 속에서 다양한 결로 다가온다.

모모가 말하는 시간의 의미란 결국, 우리가 그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얼마나 깊이 경험하느냐에 달려 있다. 회색 신사들이 말하는 효율성만을 좇으면 우리는 시간을 소비할 뿐이고, 반대로 의미를 찾으려는 의식이 함께할 때 비로소 시간은 우리 삶 속에 ‘깃들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시간을 단순히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차분히 마시는 법을 배워야 한다. 때로는 뜨거운 커피를 앞에 두고 한 박자 늦추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때야 비로소, 시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닌,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는 향과 온기가 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아아를 열심히 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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