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불교

by 다크브라운

우리는 흔히 연결을 두 개의 자아가 만나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와너, 주체와 객체, 내부와 외부 사이에 어떤 다리가 놓이는 것. 그러나 불교는 그 연결의 출발선을 다르게 놓는다. 불교에서 모든 존재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는 연기의 가르침은, 세상의 모든 현상이 인연과 조건에 의해 생겨난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본질적으로 서로 의존적이고,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불교의 무아사상은 자아를 하나의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는다. 나란 존재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건들의 집합일 뿐이다. 나라는 감정, 기억, 사고, 몸—all of it—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환경, 역사, 사회적 맥락 속에서 구성된 유동적 구조다. 이 말은 곧, ‘나’는 처음부터 ‘너’와, 그리고 ‘세상’과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진정한 연결이란, 내가 타인과 연결된다는 자각이 아니라, 애초에 분리된 적이 없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연결은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자비(慈悲)는 도덕적 감정이 아니라 존재론적 통찰이다. 너의 고통이 나의 고통처럼 느껴질 때, 그것은 단지 연민이 아니라, 우리가 같은 맥락 안에 있는 존재임을 아는 직관이다. 그 직관 위에서 비로소 ‘함께 살아간다’는 말이 의미를 갖는다.


연결은 대상이 아니라 방식이다. 우리는 이미 서로 연결되어 있고, 삶은 그 연결을 깨닫는 과정에 가깝다. 그러므로 연결이란, ‘너도 나도 하나의 실체가 아니다’라는 무아의 통찰 속에서, 타인을 해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생기고,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여기는 존재의 부드러움에서 출발한다.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매 순간 연결 위를 걷고 있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과해 방 안을 비출 때, 그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라 태양과 지구의 거리, 대기의 구성, 이 방을 지은 사람의 손길까지 겹쳐진 결과다. 식탁 위의 한 조각 빵에도 수많은 이의 노동과 계절의 흐름, 땅과 물과 시간이 스며 있다. 우리는 매일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받은 줄도 모르고, 연결된 줄도 모른 채.


하지만 마음을 조금만 고요히 하면, 이 삶이 얼마나 많은 인연의 엮임 속에 놓여 있는지 느낄 수 있다. 그 감각은 때로 ‘감사’로, 때로 ‘겸허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감정이 우리를 다르게 살아가게 한다. 무언가를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고,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게 되고, 말을 건넬 때조차 조금 더 다정해진다. 연결은 그렇게 자각을 통해 윤리가 되는 방식이다.


불교는 말한다. 연기된 존재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관계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서로를 구성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연결은 감정이 아니라 실재이고,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다. 다만 우리는 그 사실을 망각할 뿐이다. 고통은 그 망각에서 비롯되고, 자비는 그 기억에서 솟아난다.


삶이란 결국, 연결의 기억을 되찾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나는 홀로가 아니라는 것, 이 숨도 누군가와 나누고 있다는 것, 내가 머문 자리마다 보이지 않는 연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을, 천천히 깨달아가는 과정. 그리고 그 깨달음 속에서, 조금 더 부드럽게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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