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삶은 잘 깨지는 유리잔 같았다. 손에 들고 흔들 때는 그저 투명하고 가볍기만 했지만, 부딪히고 나서야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색이 담겨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늘 그 조각들을 주워 닦는 일로 살아왔다. 붉은 파편, 푸른 파편, 이름 붙이지 못한 조각들. 누구는 그것을 실패라 불렀고, 누구는 이별이라 불렀으며, 또 누구는 시간 낭비라 했다. 그러나 나에게 그들은 한 번도 버려진 적이 없었다. 나는 그것들을 모아 작은 유리창 하나를 만들었다. 아직은 나만이 들여다볼 수 있지만,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조용히 열어줄 수도 있을, 그런 창.
그 창문은 멀리 있는 세상과 나를 잇는 통로였다. 어느 날은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었고, 어떤 밤은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를 갈고닦았다. 세상은 그 시간을 ‘헛된 준비’라 불렀다. 아무런 결과도, 증명도 없었기에.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반복되는 문장 속에서 언어가 정리되고, 생각이 정돈되며, 말보다 깊은 침묵이 자라났다는 것을. 그 침묵은 이후의 많은 대화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건네는 방식으로.
살면서 우리는 때때로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시작 앞에 선다. 주목받지 못하고, 숫자로는 의미 없는 시간. 하지만 바로 그런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세 명의 사람, 세 쌍의 눈빛,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던 한 장면. 그 자리에 나는 나를 데려다 놓았다. 누구도 ‘가능성’이라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매일 그 자리를 지켰다. 시간이 흘러 사람은 늘어났고, 공간은 넓어졌지만, 나는 그 처음의 작은 무대를 기억한다. 그 공간이 나에게 가르쳐준 건, 진짜 변화는 의심 없이 머무는 반복 속에서 온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사람을 오래 본다. 말보다 눈동자, 설명보다 망설임. 직관이라는 감각은 어쩌면 반복된 관찰에서 길어 올려진 내면의 물결 같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방향이 될 때가 있다. 이유는 없지만, 멈출 수 없는 확신. 나는 그 감각을 따라 걸어왔다. 그리고 종종, 그 길은 낯설지만 정확한 곳으로 나를 데려가곤 했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자의 고요를 지니고 있었고, 우리는 그 고요를 조금씩 꺼내어 나누는 방식으로 함께 머물렀다.
어떤 이들은 이 모든 선택과 흐름을 ‘직관’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충동이나 운에 맡긴 무계획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없이 고민하고, 되묻고, 반복해서 되짚는 끝에 남은 잔류 감각. 나는 직관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직관을 만들기 위해, 더 단단한 직관을 만들기 위해 오래 관찰하고 관찰하는 사람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결국 반복한 만큼 본다. 많이 고민한 만큼 느끼고, 많이 실패한 만큼 단단해진다. 그것이 맞는 방식이다.
나는 배움이란, 내 안의 지식이 멈추는 자리에서 타인의 지혜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가진 판단으로 모든 것을 단정하지 않고, 때로는 다른 이의 손을 빌릴 줄 아는 겸허함. 예컨대 어떤 길에선 내가 앞장서야 하고, 어떤 길에선 누군가의 걸음을 따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걸 아는 태도.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순간, 배움은 책을 벗어나 삶이 된다.
우리는 가끔 내가 아는 것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경험은 말한다. 평생 학습자는 내 지식의 한계를 초월한 자리에서 서 있다. 중요한 것은 타이늘 신뢰하는 용기다. 내가 가진 정보와 확신만으로는 해답에 닿을 수 없다는 걸, 어쩌면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이 진짜 성장이 시작되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가 머무는 환경을 중요하게 여긴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서로의 약함을 감싸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곁에서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한 사람의 결심은 때로 나머지 모두에게 물결이 되어 닿는다. 나 역시 그런 영향을 받으며 지금껏 걸어왔다. 조용한 책상 앞에서 시작된 고민은, 점차 말이 되고 행동이 되었고, 언젠가는 누군가의 삶에도 닿을 수 있는 방향으로 자라났다.
그리고 나는 안다. 배움이란 결국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나를 위한 문장이 타인을 향해 쓰일 때, 혼자 끄적인 생각이 누군가의 내일을 바꿀 때, 그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는 배움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그 온기는 눈부시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처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돌아보면 나는 실패를 통해 말하는 법을 배웠고, 이별을 통해 관계를 다시 생각했다. 책상 앞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문장이 되었고, 혼자 앉아있던 밤들은 결국 타인을 이해하는 바탕이 되었다. 어떤 것도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다. 삶은 그걸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증명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내 안의 조각들을 닦는다. 어제의 파편이 오늘의 빛이 되고, 오늘의 실수가 내일의 방향이 되도록. 그렇게 조금씩, 나는 나를 만든다.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히. 그리고 언젠가, 그 창을 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