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아메리카노

한국사회

by 다크브라운

파주출판단지의 한적한 카페에 앉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이곳의 공기는 다른 도시와는 달리 한 박자 느렸다. 책이 쌓여 있는 풍경은 그 자체로 여유를 선물하는 듯했다. 잔을 손에 들고 느껴지는 뜨거운 온기는 잠깐의 쉼표를 강요했다. 바로 마실 수 없다는 불편함 속에서 오히려 천천히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배운 것 같았다.

문득, 늘 마셔왔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떠올랐다. 얼음이 가득 담긴 투명한 컵을 들고 빠르게 움직이며 커피를 들이키던 내 모습. 얼음이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좋아서, 시원한 맛이 익숙해서 마셨던 그 음료는 어쩌면 내가 쫓기던 삶의 상징이었는지도 모른다. 빠르게 해치우고 넘어가야 하는 하루하루가 얼음처럼 차가웠던 기억으로 떠올랐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유독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까? 우리는 서둘러야만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무엇이든 빨리 끝내야 하고, 다음 일을 시작해야 한다. 바쁜 사람일수록 시간이 없다는 듯 차가운 음료를 입안에 쏟아붓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우리의 급한 마음과 가장 잘 어울리는 선택지인 셈이다.

그러나 따뜻한 커피는 다르다. 이 음료를 마시려면 기다림이 필요하다. 식을 때까지 잠시 멈춰야 한다. 뜨거운 커피는 그 자체로 우리를 멈추게 하고, 그 멈춤 속에서 작은 여유를 찾아낸다. 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 느린 순간이 가져다주는 경탄에는 감사함을 느낀다.


경탄이란 무엇일까? 거대한 깨달음이 아니라, 내가 지나칠 뻔한 순간들 속에서 잠시 멈춰 발견한 작은 아름다움이 아닐까. 따뜻한 커피 잔을 식히는 동안, 나는 경탄의 순간을 찾는다. 책 한 줄의 깊은 의미, 카페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결, 잔잔한 배경음악의 멜로디. 이런 사소한 순간들 속에 삶의 진짜 기쁨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나에게 작은 깨달음을 준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삶은 본래 빠르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음미하는 여정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이 뜨거운 커피와 함께 시간을 마신다.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하루를 천천히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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