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간

이성과 감정

by 다크브라운


좋은 시간은 항상 즐거운 시간일까.

나는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다.

웃고 떠들고, 피곤하지 않았고, 기분이 좋았던 순간이면

자연스럽게 ‘좋았다’는 평가가 따라붙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장면들은

꼭 그런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때가 많다.


기억에 오래 머무는 시간은 대체로 사람이 함께 있었던 순간이다.

그 사람과 나눈 조용한 대화, 뜻하지 않게 서로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게 된 순간,

심지어 다투었던 기억조차도.

혹은 아무 말 없이 같은 공간에 머물던 정적.

크게 특별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자주 떠오르고, 지나고 나서야 의미가 생기는 시간들이다.


우리는 때로 그런 시간들을 되짚으며 평가하려 든다.

‘무엇이 남았는가’,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감정은 좋았다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머리는 효율과 결과를 따져 묻는다.

그러다 보면 즐거웠던 시간엔 의미를 기대하고, 깊은 사유가 있었던 시간에는 감정적 충만감을 요구하게 된다. 어떤 시간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고, 설명 가능한 것으로만 정리하려는 태도가 스며든다.


한쪽 기준에만 의존해 사람을, 경험을, 혹은 시간을 판단할 때 그 시선은 종종 편향된다.

감정에 민감한 사람은 이성적 반응을 차갑다고 여기고, 논리 위주로 사고하는 사람은 감정적 표현을 비논리적으로 본다.

그러나 그 둘 중 하나만을 진리처럼 내세우는 태도 자체가 오히려 비합리적인 것이다.


진정으로 균형 잡힌 사고란, 감정과 사고가 나란히 작동하는 방식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순간에 어떤 감정이 오갔는지, 그 감정이 어떤 전환점을 만들었는지, 그 모든 것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한 시간의 전체적인 결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태도가 있을 때, 우리가 겪은 시간은 단순한 사건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정서가 그 순간을 살아 있는 경험으로 만들고, 이해는 그것을 정리하고 받아들이게 한다. 두 요소가 맞물릴 때, 흘러가는 시간은 방향을 바꾸는 힘이 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통념적으로 ‘좋은 시간’에서 배제하는 순간들인 다툼, 오해, 실망, 고요한 고통조차도 어떤 감정이 선명히 지나간 시간이라면 결국 우리의 삶에 자취를 남긴다.

그리고 그 흔적이 이후의 나를 조금 다르게 만든다면, 그 시간 역시 되돌아볼 가치가 있고, 때로는 ‘좋았다’고 말할 자격을 얻게 된다.


그래. 모든 순간이 꼭 크고 선명할 필요는 없다.

그 시간이 어떤 눈에 띄는 결과를 남기지 않았더라도, 이후의 내가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거나, 잊고 있던 사람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면, 그건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좋은 시간은 여백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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