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브레코드
고유성과 여유에 대하여
우리는 날마다 더 빠른 기계와 더 매끄러운 인터페이스 속에서 살아간다. 손가락 끝만 스치면 문이 열리고, 음성 몇 마디면 수천 개의 정보가 눈앞에 쏟아진다. 편리함은 더 이상 특별한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숨 쉬듯 당연한 조건이 되었고, 오히려 불편함이 낯설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진정으로 찾는 것은 이 편리함 속에서 점점 더 사라져가는 고유성이다.
고유성은 단순히 남들과 다른 표지나 외형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험의 흔적 위에서만 드러난다. 어떤 취향은 실패한 선택과 지루한 반복, 불완전한 시도들을 거치며 서서히 다져진다. 불편함을 견뎌내고, 모호함 속에서 길을 더듬을 때 비로소 자기만의 서사가 쌓인다. 그래서 고유성은 곧 시간의 무늬이고, 시행착오의 집적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모순된 요구를 던진다. “고유하라, 그러나 빠르게.” 무언가에 몰두하고 삐끗하며 시간을 태워야만 얻어지는 고유성을, 몇 번의 클릭으로 즉시 마련하라고 다그친다. 소셜 미디어의 트렌드는 남들과 다른 얼굴을 보여주라고 외치면서도, 결국은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차별화된 나’를 연출하게 만든다. 그렇게 우리는 편리함을 좇으면서도 진짜 나를 찾지 못하는 역설 속에 서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취향은 불편함의 자리에서 시작된다. 먼지 쌓인 LP를 꺼내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맞추며 노이즈 섞인 첫 소리를 기다리는 과정, 원하는 곡 하나를 듣기 위해 양면을 바꿔야 하는 수고, 흘려듣지 않고 앨범 전체의 호흡을 따라가야 하는 집중. 이 모든 불편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쌓아가는 과정이고, 그 과정이야말로 남들과 구별되는 고유성의 원천이다. 편리함은 순간을 채우지만, 불편함은 시간을 길게 만든다. 결국 진짜 취향은 불편함을 감수한 사람에게서 드러나며, 그 흔적은 타인에게도 은근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쌓인 취향은 단순한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고, 타인에게 매력으로 전해진다. 우리는 그래서 취향이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 그것은 단지 특별해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여유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여유란 조급함이 없다는 뜻이고, 조급함이 없다는 것은 이미 많은 서사를 지나왔음을 의미한다. 서사를 품은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무언가 이야기할 것이 있고, 그 이야기의 무게가 그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자기 이야기만에 머물지 않는다. 여유가 있는 이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태도에서도 다르다. 그들은 옳고 그름의 단순한 경계에 집착하지 않고, 타인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며 그 속에서 배운다. 때로는 자기 의견의 오류를 인정하고, 타인의 주장을 통해 그것을 수정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관심은 결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유가 흘러가는 방식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취향이란, 불편함을 견뎌낸 흔적이며 여유로 남는 시간의 무늬다. 그런 사람 앞에서 우리는 안도한다. 그들이 지닌 고유성은 화려한 표식이 아니라, 조급함 너머에서 쌓아올린 서사의 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서사의 깊이 속에서, 오래된 바늘 끝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서로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