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
우리는 대개 일을 성취의 수단으로만 여긴다. 해야 할 목록을 지우듯 처리하고, 끝난 뒤의 안도감이나 보상만을 상상한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바꿔 보면, 일은 하루의 가장 길고 단단한 숨결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움직임 속에 작은 리듬이 숨어 있고, 그 리듬을 귀 기울여 따라가다 보면 생각은 한 겹씩 가벼워진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 창가에 드리운 빛, 손끝에서 사각거리는 펜의 촉감은 모두 지금 이 자리에서만 깨어날 수 있는 감각이다. 그것들을 천천히 바라보면, 일은 더 이상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나를 머물게 하는 것’으로 변한다. 그 순간은 명상과 닮아 있다. 몸은 움직이지만 마음은 고요한 호수처럼 깔려, 깊은 집중이 자연스러운 평온을 낳는다.
물론 모든 일이 늘 평화롭지만은 않다. 난관은 의외의 지점에서 튀어나오고, 성과에 대한 압박은 숨을 옥죄기도 한다. 그러나 명상 역시 처음부터 고요한 것은 아니다. 호흡을 따라가며 스스로의 산란을 바라볼 때, 비로소 마음은 그 본래의 맑음을 조금씩 드러낸다. 일 또한 그렇다. 흐트러지는 순간조차 관찰하며, 다시 중심을 찾는 훈련이 된다.
오늘의 일은 어제의 나를 넘어서는 연습이고, 동시에 지금을 견디고 들여다보는 연습이다. 명상을 한다고 마음이 완전히 비워지는 건 아니듯, 일을 한다고 세상의 소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그 소음 속에서 한 줄기 숨결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숨결이 우리를 조금 더 단단하게, 조금 더 섬세하게 만든다.
(이번에 폭력에 대해 다룬 발제문이 많은데, 때론 아니, 자주 나에게 “일하는 게 안 힘드냐”고 묻는 게 가장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왜 꼭 일이 힘들다고 정의되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물론 즐길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음이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