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에 젊음이란

이스탄불 여행에서 만난 미친 사람들과 좋은 사람들

by 루이스

이스탄불 숙소는 3박에 8만 원 정도 하는 올드 시티에 있는 작은 호텔이었다. 호텔의 호스트는 7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버스에서 만난 이라크인 두 명이 있었는데 숙소까지 데려다주며 귀찮게 하던 중이었다. 심지어 호스트에 남은 방이 있냐며 물어봤는데 다행히 호스트분이 낌새를 채고 방이 없다고 하며 돌려보냈다.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다.​

영어가 능통하진 않으셨지만 대화를 꽤 나눴다. 아지즈는 태권도 사범이었고 한국분께 배워서 한국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환대해주는 느낌이었다. 밥은 먹었냐며 본인이 요리한 음식까지 대접해줬다. 맛은 솔직히 별로 없었지만 감사히 먹었다.​


호텔에 머무는 3일 중 이틀은 아지즈의 일이 끝나면 드라이브를 나갔다. 로컬과 함께하는 드라이브는 여행자에게는 특별한 경험이기에 감사하게 생각했다. 차로 꽤 걸리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까지 대접받았다.​


아지즈가 호텔을 운영한 지는 10년 짼데 6년 전에 아내분이 돌아가셨고, 팬데믹 동안 호텔 문을 닫아 최근에서야 다시 오픈을 했다고 했다.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지 상상도 안 갔다. 그제야 왜 이렇게 잘해주는지, 나한테 도리어 왜 고맙다고 하는지 이해가 갔다.

둘째 날에는 사실 조금 피곤했고 그래서 그런지 언어 장벽 때문에 대화가 더 잘 안 되는 느낌이라 짜증도 났다. 터키쉬 디저트를 먹으러 젊은 사람이 많은 구역에 갔는데 괜히 시선이 신경 쓰이기도 했다. 배도 불러서 디저트를 하나만 시켰는데 사실 힘들게 거기까지 가서 하나 시킨 것도 나중에 생각해 보니 미안했다. 손녀 보는 마음으로 더 시키기를 바랐을 것 같다. 아무튼 그날은 호텔에 와서 바로 방으로 들어갔는데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피곤한 게 더 컸다.

셋째 날엔 같이 못 가겠다고 약속을 취소하는 문자를 보내고 전 날에 만났던 우크라이나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12시에 호텔로 갔더니 아지즈가 그때까지 깨어 있었다. 늦은 밤에는 원래 로비와 가까운 작은 방에서 자고 벨을 누르면 일어나서 나오곤 한다고 알려줬던 터라 자고 있겠지 했는데 깨어 있어서 미안했다. 나를 기다린 듯했다.​

마지막 날을 앞두고 대화를 몇 분 동안 했다. 이스탄불 여행은 재밌게 했냐며 나중에 또 오면 차로 이스탄불 한 바퀴 돌자고 했다. 호텔을 이스탄불의 집이라고 생각하고 나중에 후에 친구와 오면 좋은 방을 대접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만나 너무 반가웠다고 고맙다고 했다. 내가 고마워야지 왜, 하면서 잘해줘서 고맙다며 마지막 같은 인사를 하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났다.


울면서도 이유를 모르겠어서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미안함, 안쓰러움, 고마움이 한꺼번에 밀려온 것 같다. 이스탄불에서 미친 사람들도 만났는데 이렇게 아무 이유 없이 잘해주고 좋은 말을 들으니 그런가 싶기도 했다.

아지즈도 젊었을 땐 국가대표까지 하며 빛나는 시절을 보냈을 거다. 그러다 지금은 홀로 호텔을 운영하며 스쳐가는 여행객들을 보고 젊음을 회상하며 그리워하겠지.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나를 만나 잘 되지 않는 영어지만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며 새로움을 찾은 것 같다. 아지즈와 대화하면서 날 보던 따뜻한 눈도 잊을 수 없다.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흥미롭게 들을 때 반짝이던 그 눈빛은 70대 할아버지의 얼굴을 빛나 보이게 했다. 젊음에 대한 부러움 같은 게 어려있었다. 딸처럼 생각하고 이것저것을 다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마지막 날 떠날 땐 내가 안 보일 때까지 호텔 입구 앞에 서서 마중해줬다.


아직도 눈물의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고 말로 설명할 수가 없지만 아부다비에 오는 비행에서도 글을 쓰다가 자꾸 눈물이 나서 글을 다 쓰지 못하고 하루가 지나서야 다시 쓰는 중이다.

​3박 4일간 이스탄불을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느라 많은 곳을 가보진 않았지만, 청춘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게 됐다.


만난 사람 중엔 야셉이라는 꽤 이상한 아저씨도 있었는데 그 사람도 인생을 즐기라고 말 끝마다 반복했다. 우크라이나 친구 마리아는 살던 곳이 러시아군에 점령 당해 고향을 떠나 밴쿠버로 가려고 준비 중이었다. 어머니도 떠나고 싶어 했지만 나이 드신 할머니도 있고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남아있다고 했다. 친구는 제약이 없기에 나라를 떠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거다.​


젊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 젊음은 한 때다. 우리 엄마도 말했듯 나이가 들면 젊을 때를 회상하며 그 추억을 먹고 살아간다. 지금 내가 있는 상황과 이 시간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현재를 살며, 젊음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즐길 거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