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다그룹 경영을 통해 보는 중국 비즈니스의 위기와 기회
본 내용은 2021년 10월, 동아비즈니스리뷰-DBR 제335호에 수록된 『360조 원 빚과 함께 추락한 방만 경영, 중국의 정책 역주행 대비 전략이 교훈』의 순화되고 검열되지 않은 원문 입니다.
part 1 부터 보기
<두 번째 함정> 문어발 게임
쉬 회장은 소위 흙수저 출신이다.
그리고 흙수저가 가진 장점과 단점을 모두 보여주는 경영 행보를 이어왔다.
절박함과 절실함이 간절했을 창업 초기, 그는 당시 공산당 정책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며 선택과 집중이라는 노선을 견지했다.
개방개혁의 거점 지역, 회전율 빠른 소형 주택, 모범적 거주환경 건설이라는 전략을 통해 공산당의 두 번째 스텝인 소강사회(小康社會모두가 여유 있는 문화 사회) 도달 목표에 올라탔다.
그리고 성공했다.
하지만 부동산 사업을 통한 쉬 회장과 헝다의 성공은 철저한 레드오션과 직면하게 되고 정체되기 시작한다.
어렵게 올라온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정체된 성장을 타개하기 위해 쉬 회장이 찾은 대책은 업종 확장이라는 ‘세(勢) 불리기’였다.
그 어렵다는 업종의 확장을 도모하며 쉬 회장은 너무도 간단한 이유와 방법을 선택한다.
확장할 업종의 분야는 그의 촌스러운 출신, 고루해 보일지 모르는 부동산 사업과는 거리가 먼 ‘폼 나고 세련된 사업’이여야 했고 타이밍에 어울리는 ‘국가 지원 대상 사업’이기도 해야 했으며 확장 방식은 소위 말하는 현질, 바로 인수합병을 통해서였다.
그렇게 그는 헝다의 핵심 영역인 부동산과 무관한 전기자동차, 스포츠, 헬스케어, 첨단 기술, 식음료와 같은 분야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는다.
물론 R.O.I.에 대한 현실적 운영 계획과 그룹 내 기업 간의 시너지 전략 같은 것은 없었다.
정부 보조금에 기댄 초창기 열풍 역시 끝물이던 전기자동차 사업에 한번 꽂히니 꼭 장바구니에 담아야 직성이 풀린다.
기분 좋은 쇼핑으로 FF(패러데이 퓨처)를 집어들었으나 전화 늦게 받았다고 퇴사 당하는 수준의 강압적인 헝다식 경영과 충돌하며 흡수가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고집스러운 쉬 회장은 거기서 굴하지 않고 불과 몇 달 뒤 스웨덴의 전기자동차 업체 NEVS를 인수한다.
그리고 호기롭게 떠들었다.
“테슬라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 밖에 없다고!”
이런 식으로 2015년 이후 쏟아져 나오는 부도, 부실기업들을 쓸어 담는 데만 무려 11조 원(600억 위안) 이상을 털어 넣었다.
중점 사업이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던 헝다는 높은 대출 비중(8.3%)으로 자금 선순환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개발하고 육성해야하는 미래 산업에 대한 대대적 투자는 보유 부동산의 전체 순환이 50년 이상 걸리는 헝다에게 심각한 무리수였던 것이다.
이러한 ‘묻지마식 투자’는 헝다그룹을 부실기업의 온상으로 만드는 올가미가 되었다.
우리 역시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기업을 운영하고 키우던 시기가 있었다.
1970~90년대 만해도 우리가 말하는 소위 문어발식 ‘재벌 그룹’들이 당연하던 때였다.
하지만 우리는 대우, 동양, 한보그룹 등의 사태 등을 겪으며 유착과 독점, 세습이라는 적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꽌시(關系)와 췐즈(圈子)가 주요 공식인 사회이다.
웬만한 한국인들은 모두 한 번 이상 들어봤고 의미를 알고 있다 생각하는 꽌시는 사실 그 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가 드물다.
혹, ‘꽌시=친밀하고 가까운 관계’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해를 지울 필요가 있다.
중국인에게 꽌시는 이렇게 감상적이고 도의적인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철저히 이해타산적인 공식에 가깝다.
서울시와 베이징시는 30년 가까운 자매결연 관계이다.
긴 시간 동안 두 도시는 수많은 우호 행사와 교류를 진행하며 사이좋은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겼고 천재지변이 닥치면 서로 간 구호물자를 보내주며 도움과 위로의 인사를 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시가 곤경에 처했다.
대기를 가득 채운 미세먼지로 한국이 괴로워하기 시작했고 그중 많은 원인이 중국발 미세먼지임을 민관 연구 단체의 보고, 언론들의 보도를 통해 국민이 알게 되었다.
국민들은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이 난제를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 주길 호소했고 서울시민 역시 예외가 아니었기에 그 숙제는 서울시에도 주어졌다.
서울시는 자매도시인 베이징에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자 제안했다.
“서울시-베이징시 통합위원회 내에 환경팀을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대기질 개선 포럼을 개최해 공동 연구 과제를 선정하면 어떨까요?”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서 베이징에 직원을 파견해 연구를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베이징시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하오(好좋아요)”, “커이(可以그러시죠)”였다.
그리고 긴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그 결과와 성과를 찾으려 한다면?
역시나 당연히도 별 볼 일 있는 무엇이 없다.
결국 중국인의 “하오”와 “커이”는 “메이꽌시(沒關系괜찮다)”와 동일한 답변이었고 두 도시 간에 이런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만한 ‘꽌시’가 없다(沒없을 몰)는 대답이기도 하다.
반면,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가 묶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리고 그 이해관계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금전적 이익’이다.
상대와 이익을 공유하고 또 나누는 관계에서는 철저하게 꽌시가 존재한다.
상대가 나를 돕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동참하여 있는 것을 우리는 꽌시라고 한다.
다시 말해, 공동의 이익을 담는 배를 띄우고 그 한배를 탄 경우, 그 배를 꽌시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상대의 소중한 재산과 지위를 박탈할 기회를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꽌시는 형성된다.
내 의견과 청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에 상응한 응징이 가능한 관계조차도 꽌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꽌시가 자연발생적인 것이려면 최소한 금실 좋은 부부나 직계 혈연 정도는 되어야 하고 아무리 죽마고우라 할지라도 이 배가 완성되어 있지 않다면 꽌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과 사가 구분이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꽌시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개개인의 꽌시들이 엮여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거나, 공동의 이익을 위해 꽌시들을 다발 지으면 그것을 췐즈라고 한다.
췐즈(圈子)란 ‘공동체’란 뜻을 지닌 단어이지만 사실상 ‘이너서클’의 의미가 더 강하다.
그것은 우리나라와 같이 혈연, 동향, 동문 등의 우발적 관계들로 형성되는 울타리와는 여러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차라리 음모론자들이 늘 떠드는 ‘일루미나티’에 가까운 비정규 조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빠르다.
이러한 췐즈는 집단적 이기주의를 지향하며 모든 분야에 존재한다.
이를테면, 중국의 ‘사인방’, ‘태자당(太子黨)’, ‘상하이방(上海幇)’ 등은 정치적 췐즈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B.A.T.’, ‘T.M.D.’ 등은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토우티아오(바이트댄스), 메이투안, 디디추싱‘ 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각 회사들을 주축으로 한 그들의 IT 사업 췐즈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췐즈 내에서 인프라와 역량을 공유하고 이익과 성과를 나눈다.
반대로 그들 이외의 췐즈와 췐즈의 구성원에게는 철저히 배타적이며 야비할 정도의 성벽을 세운다.
이러한 췐즈의 경합은 어떠한 개인이나 한 회사가 상대할 수 있는 종류의 힘이 아니며 이러한 췐즈 내에서도 구성원의 역량이 부족해지고 쓸모가 다하여지면 가차 없이 낙오될 수 있기에 모두가 이러한 췐즈 구축, 참여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는 기업들의 이러한 췐즈 구도에 공산당이 불편한 시선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불과 얼마 안 된 시점부터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췐즈 내의 집단 이기주의적 사업 운영, 췐즈 간의 경합에 대해 ‘반독점법’을 통해 노골적으로 제재에 나선 것이다.
공산당 주류 세력 외에 스스로를 중심으로 세를 키워 그 부와 힘을 키워나가는 기업들에 대해 중국 공산당은 응징과 분해를 시작했다.
더군다나 헝다는 시진핑의 태자당이 아닌 상하이방과 공청단(중국 공산주의 청년단)의 물주이기도 했던터라 구제 받기 힘든 줄에 서 있었다.
물론 세상도 사람도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막강한 공산당이어도 이러한 시도와 변화 속에서 기존의 행태를 쉽사리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어려운 ‘눈치 게임’에서 헝다그룹과 같이 눈치 잘못 보고 단지 모양만 좋은 세를 불리려다 공산당 눈에 띄는 순간 날아오는 망치를 맞는 것은 당연지사인 것이다.
“공로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죄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주어야 하며, 한 사람을 벌함에는 백 명이 경각할 수 있는 본보기가 될 수 있어야 한다 (信賞必罰, 一罰百戒)” - 한비자
<세 번째 함정> 정책 도박이라는 러시안룰렛
2017년은 쉬자인 회장에게 인생 최고의 해였을 것이다.
2015년부터 이어진 헝다그룹의 성공으로 회사는 광폭적인 성장이 진행 중이었고, 쉬 회장은 명실공히 중국 1위의 부호로 등극했다.
헝다 창업 20주년이던 이 해에 그룹의 구단 광저우 헝다는 7년 연속 리그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그때, 쉬 회장은 쏟아지는 축하 인사에 기쁨과 만족감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잭팟을 기대하며 더 큰 도박판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짜릿함을 누리고 있었으리라.
헝다가 최고이기 이전인 2014년,
중국은 그간 이어진 유례없는 경제발전과 오랜 기간 함께했던 부동산 붐이 가라앉으며 전국적 부동산 사업 불황기를 맞이했다.
부동산 재고에 대한 중국 정부의 불안감이 안정화 정책으로 등장했고 땅값이 추락하기 시작하며 부동산 가격은 정체 상태였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쉬 회장은 과감히 베팅을 시작했다.
가격이 하락하는 땅과 오래된 주택들을 매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16년, 그의 베팅이 승전보를 전해오기 시작했다.
급작스레 찾아온 경제 침체의 돌파구로 중국 정부가 암묵적 합의와도 같이 부동산 안정화라는 이빨을 숨기고 부동산 재개발이라는 형태로 꼬리를 내린 것이다.
그 몇 해의 성공은 쉬 회장에게 인생 최고의 2017년을 선물했다.
하지만 판돈을 쓸어 담은 그는 그 판을 접고 떠날 생각이 없었다.
쉬 회장은 지속해서 토지 매입을 진행했다.
계속된 베팅에 그 해 헝다의 부채 비율은 800%에 육박할 정도였다.
그사이 중국 공산당은 잠시 숨겼던 조정의 이빨을 다시 드러내고 있었다.
“부동산은 거주하는 공간이지, 투기하는 수단이 아니다! (房住不抄)”
이미 발표한 중국 정부의 방침에 중국 인민은행 총재인 저우샤오촨(周小川)이 못을 박았다.
“과도한 부채 확대에 기댄 경기 호황이 끝나면 은행 채무자들의 부채 상환 능력은 한계를 만날 것이다. 결국은 건전한 자산까지 내다 팔게 되는 금융 시스템 붕괴 시점이 도래하고 있다”라는 ‘민스키 모멘트’를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쉬 회장은 고집불통이었고, 게임에 몹시 취해있었다.
2020년 7월, 중국 공산당은 세 개의 레드라인
선급금을 제외한 자산 대비 부채 비율 70% 초과
순부채 비율 100% 초과
현금의 단기 부채 비율 1미만
이라는 것을 정하고 이 기준에 해당되는 부동산 개발 기업을 대상으로 대출 규제를 시작했다.
중국 부동산 탑 티어 기업들은 사업 확장에 급브레이크를 밟고 디레버리징을 시작했다.
하지만, 헝다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고금리 국외 채권까지 발행하며 붉은 선 저 너머까지의 외로운 역주행에 여념이 없었다.
부동산 황제가 된 그의 눈에는 정부도 어찌 못할 중국 부동산 시장, 그리고 공산당도 결국은 타협해야 할 경제 발전에 대한 압박이 확신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이번에는 이빨을 숨기지도, 꼬리를 내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쉬 회장에게는 두 번째 행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대동사회(大同社會만민의 신분적 평등과 재화의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워 더욱 강력해진 부동산에 대한 은행 대출 규제를 들고 나타난 중국 공산당의 정책 앞에서 허무한 종말을 맞이해야 했던 것이다.
part 3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