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다그룹 경영을 통해 보는 중국 비즈니스의 위기와 기회
본 내용은 2021년 10월, 동아비즈니스리뷰-DBR 제335호에 수록된 『360조 원 빚과 함께 추락한 방만 경영, 중국의 정책 역주행 대비 전략이 교훈』의 순화되고 검열되지 않은 원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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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 시대를 잠시나마 풍미하던 초대형 기업 헝다는 이렇게 역사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종말은 헝다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며 헝다의 실책들은 헝다가 처음 행한 것이 아니었다.
부동산 기업 화샤싱푸(華夏幸福)가 그러했고,
최대 민영 금융기업이던 중민투(中國民生投資)가 동일했으며,
대형 항공사 HNA(海航集團),
IT 선봉장이던 칭화유니(紫光集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존재한 함정들에 보란 듯이 빠져버렸다.
함정 1) 모럴 해저드
이는 늘 조직의 수장들에게만 존재한 것이 아니다.
청빈하고 겸손한 대표 밑에서 그조차 모르게 조직 전반에 만연할 수 있다.
하지만 헝다처럼 기업의 수장부터 사리사욕에 잠식당한 경우라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중국의 조직은 답습과 복제를 통해 순식간에 직원 모두에게로 퍼져나간다.
헝다가 현금 유동성 악화에 허우적거리며 회사의 어려움을 핑계로 직원들에게 아파트 판매 할당량을 하달하고, 일 인당 최소 920만 원(5만 위안)의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를 강요했지만 조금의 설득력도 있을 수 없었다.
직원들은 회사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대표에 뒤질세라 한마음 한뜻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개인적 이익을 꾀했을 것이고 거기에는 어떠한 도덕적, 사회적 책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 시기 쉬 회장은 10조 원에 가까운 배당금을 챙겨 1470억 원(8억 위안)의 해외 대저택을 구입하고 110만 원(6000위안)짜리 허리띠를 차고 돌아다녔다.
이에 화답하듯,
직원들은 내부정보를 이용하여 외부와 결탁하고 헝다가 구매하려는 부동산을 350억 원(1억9000만 위안)에 선매수한 뒤 자신들의 직위를 이용해 515억 원(2억8000만 위안)에 헝다에 되팔며 엄청난 차액을 챙겼다.
또한, 헝다의 위기가 기업의 패망으로 이어지는 것이 내부적으로 확실시되기 직전, 쉬 회장의 부인과 친인척, 가까운 투자자들은 서둘러 투자금을 회수하거나 전액 환매했고,
고위급 임직원들 역시 앞다투어 투자금을 환수하는 등 소돔과 고모라의 마지막 날, 타락한 인간 군상과도 같은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함정 2) 문어발식 확장
은행의 ‘저금리 무한대출’, 대륙의 ‘규모 경제’.
최근 30년 가까이 주어진 이러한 환경 속에서 중국 기업은 마지막 열쇠인 ‘대형 자본’이라는 밑천만 갖춘다면 불패 신화를 써 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불패를 위해 이 세 개를 손에 쥐고 행해지는 무차별적 확장은 부실 자본의 돌려막기를 위한 출구 없는 유일한 길이었고
‘대마불사(大馬不死연관 산업 타격, 사회적 혼란 등의 우려가 있는 대형 기업의 경우 중국 공산당이 절대 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뜻에서 사용)’라는 무언의 협박을 위한 최선의 방어 수단이었다.
그렇기에 헝다 역시 부동산 개발의 투자가 심화되고 고금리 해외 채권까지 찍어내고 있던 시기, 주저 없이 전기자동차 산업에 뛰어들 수 있었다.
그들의 확장에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양산까지 최소 5년, 보통 10년 가까이 걸리는 전기자동차 사업에 5조 원(271억 위안)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한다.
2010년, 광저우 FC를 인수한 뒤 축구학교 설립에 2200억 원을, 수용인원 10만 명 규모의 세계 최대 축구장 건설에만 2조 원을 투자한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이 다 빚이다.
신규 사업 M&A 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볼트온 전략(유사 업체 혹은 연관 업종의 기업을 인수해 규모의 경제를 꾀하는 경영 전략) 같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
오직, 너도나도 몰려 한참을 흥행 중인 산업 트랜드, 중국 공산당의 지원 방향, 그리고 축구굴기(崛起)와 같은 지도자의 입맛을 따르는 것이 확장 산업 선택 시의 전략이라면 전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도 믿고 있던 ‘대마불사’의 원칙이 사라졌다.
공산당이 시작한 ‘옥석 선별 작업‘에 화천자동차(華晨集團), 베이따팡정(北大方正), HNA그룹이 산산조각 났다.
친자식이나 다름없는 국유기업까지 예외 없이 추려지는 이 흐름에서 헝다의 무분별한 확장은 파산으로 가는 길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함정 3) 중국 공산당 정책에 대한 역주행
중국에는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예약면담(約談)이라는 것이 있다.
중국 공산당의 정책을 위반하거나 사상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의 총수나 고위 간부들을 해당 분야의 감독 기관이 불러서 질타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소환장’이다.
그리고 멀쩡한 안색으로 이 불림을 마치고 온 이는 아직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역시 앤트 파이낸셜의 IPO를 앞둔 시기, 정부를 상대로 뱃심 좋게 날을 세웠다가 결국은 불려 들어갔다.
이미 한낱 중국 기업가 중 한 명의 수준이 아닌 세계적 인물이 되어 있던 터였고, 상하이방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던 탓에 공산당이라 한들 그까지 어찌할 수 있겠느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예외는 없었다.
앤트 파이낸셜의 상장은 물거품이 되었고 3조 원 대의 과징금과 함께 마윈의 알리바바 지분 포기설까지 떠돌고 있었다.
호사가들은 마윈이 중국 공산당 지도층들과 함께한 회의 석상에서 중국의 ‘법가적 통제’에 대해 비판했기 때문이라 이야기하지만 진짜 사유는 좀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정부는 ‘선 개방, 후 규제’라는 묘한 방식을 선호한다.
여기 빈 상가 건물이 있다.
이 상가 건물을 중국 시장이라 가정한다면,
빈 상가에 들어오는 손님과 장사꾼을 건물주는 막지도 않고 스스로들 알아서 거래하도록 내버려 둔다.
일정 시간이 흘러 상점이 가득 차고 호황이 찾아오길 차분히 지켜보는 것이다.
그리고 만족할만한 규모나 수준에 도달하면 정부는 민주적인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들만의 절대적인 기준과 방식을 통해 장사와 거래의 형태를 규정하고 운영을 통제한다.
마윈 역시 그러한 상가 건물에서 타오바오라는 전자상거래 플랫폼과 알리페이라는 P/G(Payment Gateway결제대행) 서비스를 통해 오늘의 성공을 이루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유니온페이(Union Pay중국 88개 은행이 공동 출자해 설립된 중국의 국영 독점 신용카드사)를 능가하고 정부의 통제를 넘어서는 현금의 흐름과 개인 소액 대출이 시작되었다.
설상가상, 전자상거래 플랫폼 사업을 담당하는 기업 알리바바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어 있었고 디지털 위안화 추진에 걸림돌이 될 조짐이 보이자 직접적으로 마윈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규제들이 시작된 것이다.
조심스럽게 버티고 맞서며 있던 마윈이 나름의 계획과 준비를 통해 한마디 꺼내 들자마자 중국 공산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초전박살을 내놓았다.
‘hit and run’이 안되면 애당초 하지 말았어야 하는 선택을 했고 이 모습을 보며 헝다의 쉬 회장 역시 아차 싶었겠지만, 역주행 중인 헝다를 세우기에는 너무도 빨리, 너무도 많이 와버렸던 것이다.
오늘에 와 그나마 존재하던 자율과 융통을 냉정하게 거둬내고 사람 냄새를 빼버린 중국 정치와 공산당 정책이 과연 성공할지의 여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네비게이터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다.
오히려 너무도 명확해서 그 길을 가다 보면 샛길로 빠질 일도 없어 보인다.
건강히 자랄 수 있도록 일정한 울타리 안에서 보호하고, 스스로 겪고 깨닫는 시행착오 속에서 성장한 아이는 주체적이고 온전한 자신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구축된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개체여야 하며, 국가 역시 마찬가지로 시련과 진통, 경험과 성숙을 통해 요동치듯 발전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고 민주이다.
하지만 중국의 미래는 나침반과 같이 단순해지고 있다.
주체는 중국 공산당이고 방향은 정책이다.
그 외의 것은 존재할 수 없으며 등장과 함께 잘려 나갈 것이다.
경제와 사업에 대한 통제는 더욱 제도화되고 구체화되며 늘어날 것이다.
통제가 어렵다는 4차 산업 역시 예외일 수 없으며, 최근 들어 등장한 중국의 ‘데이터보안법’은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특정 기업들의 데이터에 대한 중국 정부와의 ‘공유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번외의 이야기지만, 4차 산업은 그 통제에 있어 절대 핵심 대상이 될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법가 노선 재진입에 대한 용기와 자신감은 IT라는 21세기 신규 인프라가 없었다면 생겨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화되는 이 노선 속에서 중국 공산당의 정책과 그 방향성에 관한 연구가 더욱 중요해지는 까닭이다.
정해진 그들의 노선을 철저히 미리 파악하고 그 본질에 어울릴 사업을 도모하며 반하지 않는 경영을 추구한다면 이는 금속탐지기와 지도를 손에 쥐고 지뢰밭을 지나는 것과 같으며, 지뢰밭을 지나 보물 상자가 뭍인 곳을 찾을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제아무리 위세 등등한 중국 공산당도 그간 득세하던 고양이를 다 잡아들이고 자기 입맛에 맞추어 길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자세로 강하게 조여 오는 정부의 각 사업 분야에 대한 정책과 통제에 그간 배불리 몸집을 불려왔던 자본들이 살길을 찾아 도망칠 것이다.
그러한 중국 기업과 자본들의 비상구는 현시점에서 그리 많지 않다.
미국을 위시로 한 서방 국가들은 중국을 향해 세워놓은 칼날을 점점 예리하게 갈아가고 있다.
이미 진입한 자본조차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신흥 강국들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좀 더 물리적인 대립선상에 서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중국이 텃밭처럼 가꾸어오던 아프리카 대륙은 아직까지 생산기지와 판매시장으로써 무르익지 못했다.
결국 정서적으로는 계속된 대립 선상에 있었지만 그나마 안전하고, 무르익은 개발과 생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시장을 상대할 수 있는 강력한 무역 허브인 한국이 중국의 기업과 자본들의 줄행랑에는 최적의 출구이자 구좌로써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차분히 그들의 방문을 예측하고 준비되어 있는 이들에게는 힘 빠지고 갈 곳을 잃은 기회들이 찾아올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중국 민간에는 이런 말이 있다.
“上有政策, 下有對策위에 정책이 있다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
사람도, 그리고 권력도, 궁지에 몰리거나 답답한 상황 속에 갇히면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완성시킨다.
이러한 정책에는 단단한 해결책이 녹아있는 경우도 있고, 애매모호한 대안이 포장된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것들의 본질을 연구하고 고민하여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두 경우 모두 실제로는 단순하기 그지없고 목적하는 바도 뚜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분명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책보다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최소화된 ‘약점’이다.
불행히도 약점은 대책보다 늘 강하다.
같은 크기의 약점과 대책이 서로 맞붙는다면 대책은 백전백패이다.
실제로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했던 과거의 사소한 일들이 기업공개, 투자유치, 사업 확장 등 원대하고 치밀한 목표 앞에서 걸림돌이 되어 다리를 부러뜨리고 자리에 주저앉힌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의 미래에 그 약점이 눌러 붙게 만드는 사유는 늘 사소해보이고 즉각적인 성과를 가져다줄 것만도 같은 교활함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세련된 감각으로 시장의 흐름을 잡은 판상주환(阪上走丸)으로 위장하고,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을 효율적으로 피해가는 지혜와 슬기로 둔갑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이 뱀과도 같은 유혹이다.
그리고 그것을 배어 무는 순간 우리는 현혹되고 중독된다.
거부하기도 힘들 것만 같고 그 대가도 무시무시한 이 약점이란 놈을 최소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 것일까?
방법이라는 것이 의외로 단순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사력을 다해도 지켜나가기는 어렵다.
바로, ‘가치 추구’와 ‘일관된 책임감’의 자세가 그것이다.
가치는 크고 단단하여 사욕이 뚫을 수 없어야 하며 책임감은 홀로 있는 방안에서도 스스로를 감시하게 만들어야 한다.
단순하지만 심오하고, 간단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이 정도경영의 원칙이 긴 여정의 마지막에 모두를 살릴 것이다.
또한, 기회주의라는 사악한 기운을 막는 부적이 되어 줄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리더와 성장한 기업은 섣부른 정의감이나 아나키스트와 같은 무모함이 없다.
오히려 영악하고 지혜롭게 현실과 현상의 본질 저 너머에 있는 깊숙한 의도를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남고 또 언젠가는 승리할 기회를 모색해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대책을 가질만한 자가 세운 대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가장 좋기로는,
감당 못 할 정책을 꺼내 들고 그 정책을 위한 정책을 계속해서 찍어내며 자기가 만든 ‘법’ 안에 갇히지 않는,
그런 것이 없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