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시작으로 크리슈나무르티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지만 지식에 관해서는 아는 것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진정한 자유는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포함하여 계급, 국적, 종교, 전통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에서 온다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가 더 들어보고 싶었다. 나는 꽂히면 그 작가의 책들을 릴레이로 읽는 걸 즐긴다. <크리슈나무르티의 마지막 일기>, <앞으로의 삶>, <크리슈나무르티, 교육을 말하다>를 이어서 읽으며 크리슈나무르티의 생각을 좀 더 깊이 있게 접할 수 있었다.
초보엄마이었기 때문에 특히 그의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에 집중하였다. 이번 편에서는 <크리슈나무르티, 교육을 말하다>에 담긴 그의 생각을 살펴보며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키워야 할 지에 대해 면면히 들여다보려고 한다.
올바른 교육을 이루려면 삶을 전체로서 이해해야 하고, 그러자면 일관성이 아니라 똑바로 참되게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는 판에 박힌 생각을 하는 사람은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에 대한 이상향 '아이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틀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그 아이의 성향이나 마음가짐, 특성을 눈여겨봐야 하고, 부모의 이상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굴레를 씌워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당시 아토피가 있던 딸아이의 외모에 대한 주변의 시선과 걱정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곤 했고 자신감도 잃어 가고 있는 우울한 상태였다. 아이의 얼굴이 빨개 있을 때는 누가 볼까 봐 밖에 나가는 것도 싫었고 필사적으로 좋은 상태를 만들기에 매일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상태는 호전되고 나빠지기를 반복했고, 나의 마음도 아이의 상태에 따라 널뛰기를 반복했다. 그렇다. 나는 '아이가 좋은 피부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이상향에 갇혀 있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의 이상향대로 부풀려지고 아이는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노력하지만 현실 벽에 부딪히고 깨지면서 주변의 비난을 받고 두려움을 학습하며 자라나고 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일을 놓고 아이와 진지하게 토론하고, 아이가 지혜로운 대화를 들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아이 안에 이미 있는 탐구심과 불만을 일깨워줌으로써,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아이가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는 창조적 지성은 끊임없는 탐구와 진지한 불만에서 온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널리 받아들여진 가치에 대하여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아주 불편한 일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처음 접하는 세계는 가정이다. 그리고 처음 접하는 어른은 부모이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세상의 전부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궁금한 것 투성이다. 그는 있는 그대로 아이를 관찰하면서 이상향을 강요하지 않고, 아이와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서 스스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게 이끄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말한다.
부모가 되면 증폭되는 감정 중 하나는 '두려움'이다. 부모 또한 세상을 다 살아본 것도 아니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면서 아이에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며 권위 있게 이야기를 해댄다. 그 권위 뒤에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반항적인 아이로 클지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싶은 두려움, 아이가 잘못될지 모른다는 두려움들이 존재한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자라난다. 그리고 어느 날 깨달을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 그리고 불만을 토로할 것이다. 그러면 부모는 벌거 벗겨진 느낌을 숨기기 위해 더 큰 두려움을 만들어 아이가 꼼짝달싹 못하게 한다. 하지만 아이는 결국 안다. 부모의 민낯을, 그리고 더 이상 부모와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전에 솔직해지자. 아이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자.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은 모른다고 같이 생각해 보자고, 너의 생각은 어떠냐고 물어보자. 그렇게 대화의 물꼬를 틔워 아이가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주자.
올바른 교육은 아이가 스스로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을 찾아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진정한 천직을 찾지 못하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좌절감을 느낄 것이고, 자기 인생 전부를 헛되게 낭비하고 있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는지 지속적으로 살필 수 있다. 문제는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대상이 부모에게는 하찮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거에 신경 쓰지 말고 공부에 집중해, 책이나 더 읽으라고 말하며 아이의 불씨를 꺼트려 버린다. 그러지 말자는 것이다. 흥미가 생겼다는 것은 마음속에서 에너지가 생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상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내적 동기에 의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부모는 충분히 그것에 몰입할 수 있게 관심을 가져주고 독려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아이는 그 작은 불씨를 살려 활활 타오를 것이다. 그것을 통해 세상과 연결될 것이며, 자신의 관점으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사고의 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아이를 키우려고 노력했고, 아이는 자라면서 충분히 자신의 흥미에 집중하며 커 나갔다. 아이가 커가며 꿈의 색깔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고 아이는 흥미에 따라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가고 있다.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딸아이는 현주소는 절대 고분고분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며, 호불호가 확실한 살짝 무서운 청소년이 되었다. 잘 크고 있다는 증거이다.
무엇이 되려는 바람과 노력은 바라는 결과에 마음을 끼워 맞출 따름입니다. 그 반면에, 자유로운 마음은 항상 주의 깊게 관찰하고 배우기 때문에 자신이 만들어 낸 장해물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10년 뒤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있고, 단순직들이 기계에 대체되어 가고 있다. 이런 세상은 내가 어릴 적 들어보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다.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도 그럴 것이다. 감히 가늠할 수 없다. 그러니 부모가 바라는 결과에 아이의 인생을 끼워 맞추지 말자. 아이 스스로 세상을 관찰하고 느끼고 부딪혀 배울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키우지 못할까 봐를 두려워해야 한다.
아이는 길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전엔 반드시 길을 잃어야만 한다. 아이에게는 시간이라는 가능성이 있다. 부모가 옳다고 믿는 삶이 아니라 아이가 자유롭게 펼쳐가는 삶을 살게 하자. 시간의 힘을 믿고 아이의 자유로운 마음을 독려하며 부모는 그저 편안하고 아름다운 환경이 되어 주자. 어렵고 두렵지만 그것이 교육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