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초등교사가 되었다.



이것은 나의 아주 오래된 청춘 이야기다.


나는 중고등 시절 특별히 꿈이랄 것도 없는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딱 그런 모범생이었다. 나의 장점은 반듯함과 성실함이었고, 내성적인 아이라 학교와 집을 오가는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었기에 일탈 없이 성적은 쭉 상위권이었다.


책을 거의 읽지 않았던 유년기로 인해 국어와 영어에는 소질이 없었고, 엉덩이 힘과 성실함으로 수학은 꽤 잘하는 편이었다. 두뇌회전은 빠르지 않아 암기력은 별로였고 그나마 이해력은 좀 있었는지 수학과 과학에는 노력한 만큼 점수가 나와주었다. 그래서 단순하게 '아! 나는 이과구나' 했다.


고등학교 가서는 눈에 띄게 수학을 잘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 보면 딱히 수학머리가 없는데 성실함이 쌓여서 가속도가 붙었나 보다 싶다. 그때 당시 나는 어렴풋이 수학선생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수능 성적이 나오면 점수에 맞는 대학의 수학교육과를 가야겠다는 희미한 생각들을 하곤 했다.


그렇게 첫 수능을 치고 망치고, 다음 수능은 잘 쳤으나 원서 잘못 써 다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삼수를 하게 되었고 그쯤 나의 영혼은 새파랗고 창백해져 있는 상태였다. 더는 못한다. 어디라도 가야겠다. 지난번처럼 소신지원했다가 다 떨어지는 꼴은 못 본다. 그래도 대학생활은 대도시에서 하고 싶다. 이런 간절한 생각들로 반드시 붙을 곳만 썼다. 그리고 다 붙었다. 그곳이 교대였다.


교대는 아빠가 추천해서 쓴 곳이다. 지방 소도시 약대를 지원해 볼까도 했었는데 대도시에서 나의 20대를 보내고 싶은 마음과 맞아떨어졌다. 그 당시 교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 때문에 취업도 잘되고 신붓감 1순위라는 교대에 입학했다.


나의 대학 4년은 파라다이스였다. 취업 걱정 없이 대학생답게 20대를 보냈고 여기서도 수학교육과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이공계 지원 사업으로 지방대학 수학, 과학 1등급이었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었기 때문에 나에겐 4년 전액장학생으로 학교를 공짜로 다니는 쾌거도 있었다. 행운이 나에게 몰아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임용고시를 붙고 첫 발령지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때가 2007년 9월이니까 꽤 오래전이다. 신설학교에 발령을 받았고 1학년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외모라는 이유로 초1 담임이 되었다. 2007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면 잠만 잤던 것 같다.


결혼하기 전까지 주로 저학년 담임이었던 나는 빨리 결혼해서 아이 낳고 육아휴직을 해야겠다는 비장한 마음이었다. 그만큼 초등교사의 생활은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매일 불행했고 매일 화냈으며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나에게는 더 미안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건지 육아휴직을 하면 직업을 바꿔야겠다고 다짐했다.


초등교사가 어떤 직업인지 잘 몰랐다.

보육보단 교육을 하고 싶었는데 일상은 전쟁터였다.

20대 안일했던 직업선택을 후회했다.


나는 정말 어쩌다 초등교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