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부터 40대까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못살고 못 먹을 때는 살기 위해서 못할 게 없었는데, 선진국이 되면서 오히려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에다 취직도 어렵고 집값은 오르기만 하고 청년들은 결혼을 포기한다. 결혼을 해도 출산을 포기한다. 100세 시대에 자기 앞가림도 하기 힘든데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벅차다.
학교의 모습은 어떠한가. 무너진 교실의 끔찍한 소식들이 뉴스에 심심찮게 나오고 병든 아이들, 병든 선생님, 병든 학부모들로 인해 학교도 시름시름 앓고 있다.
이번 편에서는 <최재천의 희망수업>이라는 책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희망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한다.
방황은 젊음의 특권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방활 할 여유를 허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황은 젊음의 특권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건 그들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그들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요?
평생 자연을 관찰하고 제가 얻은 교훈은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이건만 우리 사회는 함께 사는 공생보다 끝없는 경쟁을 추구합니다.
남의 답을 절대 보아서도 안 되고, 내 답안지를 남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가리고 답을 쓰는 교육보다 서로 소통하고 숙론하며 통섭을 이뤄내는 배움을 허락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요?
조만간 AI가 훨씬 더 잘할, 그래서 결국 다 해줄 것들을 밤새도록 외워 답안지에 게워 내는 반복 훈련보다 스스로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수려한 글로 써내어 정의롭고 양심적인 삶의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갈 사회인으로 키워내는 교육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그 방법론으로 저는 숙론을 제안합니다. 이제 우리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앞에 K만 붙이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함께 모여 앉아 서로의 생각을 경청하며 합의를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AI와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아 가면 어떡하죠?
직업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자리는 없어지는 것이지, 일거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할 일이 없어지면 일을 만드는 게 우리 인간이거든요.
직장이라는 걸 만들고, 거기에 들어가 일하고 돈을 받게 하고, 받은 돈으로 먹고살게끔 바꿨어요. 그렇다면 세상의 구조를 또 한 번 바꾸면 되지 않을까요?
농경 시대에 그러했듯이 세상의 모든 일을 하나로 묶고 다 같이 일하고 나눠 먹으며 살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을 찾아내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먹고살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
번식을 못 하게 하는 게 힘들지 번식하게 하는 건 하나도 힘든 일이 아닙니다.
평생 동물을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이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동물은 상황이 조금만 좋아지면 번식을 시작합니다. 출생률을 올린답시고 애 낳으면 얼마 주겠다, 아이 셋 낳으면 군 면제해 주겠다고 막 쑤셔대는 게 답이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출생률에다 코를 박고 전략을 세우다 보면 될 일도 안 돼요.
저출생은 무척 복합적인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의 웬만한 문제들은 여기 다 결부되어 있어요. 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일을 차근차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빨리 결혼하고 싶은 그런 사회가 되면 애 낳으라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좋아질 것입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번식하려고 태어났어요. 어떻게 키울지가 걱정되니까 안 낳는 거지요. 집값도 그렇고 교육비도 그렇고, 여러 가지 경쟁에 경력 단절 문제까지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결국 '일단 시간을 보면서 부부가 먼저 살아남아야겠다'라고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전과 다르게 젊은 남성들은 육아를 돕는 사람이 아니라 육아의 주체가 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남성들이 육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정부가 과감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저출생을 막을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의 판단에 의하면 출생률이 0.6~0.7이 되면 거의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노르웨이나 덴마크, 벨기에 모두 우리보다 인구를 훨씬 적지만 잘 사는 나라입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동안 우리는 강대국을 따라가는 전략으로만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인구수가 참 애매해요. 미국은 인구가 3억 명이 넘고, 일본은 1억 2천만 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5천만 인구 가지고 인구가 몇억씩 되는 나라와 경쟁하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이제 그 꿈을 버리는 게 옳지 않을까요? 오히려 양이 아닌 질을 먼저 생각하면서 작은 나라로 소박하게, 지금 살고 있는 이 사람들을 데리고 행복하게 잘 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저는 요즘 많이 합니다.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생산성과 효율성을 더 높이고 우리 사회를 질적으로 좀 더 좋게 만들 수는 없을까요? 슬퍼하기보다는 현재의 이러한 상황에 적응하고 여기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한 게 아닌가 합니다.
단 하루도 어느 한 사람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사는 날이 없습니다.
나 혼자서 노력한다고 무슨 변화가 일어날까 하는 생각도 들 겁니다. 제인 구달 박사님이 늘 하시는 말씀인데, 단 하루도 어느 한 사람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사는 날이 없습니다.
내가 하고, 여러분이 하고,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고, 이게 다 모이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옛사람들이 말씀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내가 찾은 희망은 내가 만나온 어린이들이다. 이 어린이들이 10년, 20년 후 우리나라를 중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욕을 많이 하고 폭력적이었던 우리 반 아이는 친구들을 너무 좋아해서 친구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결국 감정조절을 해냈다. 이 아이는 재능이 많아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날 것이다.
공황이 찾아왔던 아이는 시련을 극복한 경험을 통해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방법을 이른 나이에 배웠다. 밝고 똑똑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였기 때문에 분명 자기 분야의 전문가 될 미래의 인재이다.
그 외도 셀 수 없이 나를 스쳐간 아이들 속에서 수많은 희망을 보았다. 오늘도 바른 인성과 창의성을 가진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한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나고 왔다. 경쟁 속에서도 협동을 우위의 가치에 두고,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내 덕분에'라는 마음으로 친구와 함께 성취해 나가며 바르게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오늘도 희망은 매일매일 피어나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이 아이들로 인해 밝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찾은 교실 속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