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필사 25
무시당한 날
김성범
키 작은 앵두나무 앞에 서 있는데
딱새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았다.
가슴이 두근두근
난 눈도 깜빡거리지 못하는데
딱새는
이리 포롱 저리 포롱대다가
내 얼굴 앞가지에 앉았다.
내 몸이 폭탄이었다면
쾅, 터지고 말았을 거다
딱새가 왜 이렇까
내가 손만 뻗으면 잡히고 말텐데
이러다 딱새가 내 머리 위에 앉으면 어떡하지?
이럴 때 내가 나무였으면
나무도 새가 가지 위에 앉으면 가슴이 두근거릴까?
온몸이 부르르 떨릴까?
오늘은 딱새한테 무시당해서 기분 좋은 날
딱새는 날아갔지만
난 나무인 척
움직이지 않고 오랫동안
서 있었다.
<호랑이는 내가 맛있대>中/상상의 힘
시 장면이 눈에 훤히 그려진다.
딱새를 만나고 시인은 심장이 터질 만큼 떨렸나 보다.
차라리 나무가 되어서라도 딱새와 함께 하고 싶었나 보다.
딱새는 시인을 아는 체도 안 할 뿐 아니라, 없는 존재 취급을 한다.
시인은 그게 너무 좋단다.
시에 특별한 시어나 표현은 없다.
딱새와 마주친 그 순간, 떨림의 시간을 솔직하게 쓴 시다.
아니, 너무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써서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산에 자주 간다.
손을 내밀면 새가 와서 앉는다.
새가 손을 움켜쥘 때는 가슴이 벅차다.
더 좋은 건 시인의 말처럼 무시당할 때다.
혼자 누워 있으면 새들이 내 배 위에 올라와 놀 때가 있다.
나는 사람이 아니고, 그냥 산에 있는 어떤 것이다. 그게 너무 좋다.
그 상태를 시인은 '무시당했다'는 표현으로 잡아낸다.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던 내 마음을 단번에 뒤집어 놓았다.
무시당했다는 표현을 찾으므로써 시는 생동감을 얻고, 아이들의 마음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