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모임
그림 그릴 소재는 대부분 히어리님이 내어준다. 그런데 이번 모임에 히어리님은 참석하지 못했다. 김장을 하러 지방에 내려갔다 올라오고 있는 길이라고 했다. 별꽃님은 춥다고 지난주처럼 각자 집에서 그리자고 했다. 미루나무님의 따끔한 한마디. '자꾸 그러면 습관 됩니다.' 결국 미루나무님과 둘이만 만나 그림을 그렸다.
뭘 그릴까? 찍어놓은 사진을 뒤적이다 잠자리를 그려보기로 했다.
큰청실잠자리, 깃동잠자리, 노란띠고추잠자리, 모두 예뻤다. 세 가지 모두를 그려보자는 미루나무님 말에 나는 손을 저었다.
'하나도 힘들어요.'
그림을 그리다가 미루나무님은 참 올바른 선택이었다며 웃었다.
우리가 그린 큰청실잠자리 수컷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실처럼 기다랗고 가는 몸을 가졌다. 거기다 청색을 띤다. 청실잠자리 중에서는 다소 큰 몸집을 가졌다.
잠자리를 그려 보는 건 처음이다. 우선 사진부터 꼼꼼히 봤다.
큰청실잠자리는 머리에는 커다란 눈이 있다. 옥색에 검은 눈동자가 도드라져 보인다. 더듬이는 한 쌍이다.
윗가슴은 녹청색이고 광택이 있다. 가슴 아랫부분은 옥색이다. 가슴 뒤쪽에는 날개가 두 쌍이 있다.
그림에서 날개가 세 개로 보이지만, 가운데 그린 날개에 두 개의 날개가 겹쳐 있는 모습이다.
날개는 투명하고 검은 줄이 있다. 날개에도 신경과 혈관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다리는 세 쌍으로 앞다리는 짧고, 뒷다리는 길다. 다리에는 가는 털이 있다.
배는 10개의 마디로 되어 있고 끝부분에 부속기가 있다. 수컷의 부속기는 두 개의 갈고리 모양이다.
스케치를 하고, 나는 1호와 2호 붓을 사용해 색칠을 해 나갔다.
청색이 너무 진하게 칠해져 검은빛을 띠는 큰청실잠자리가 되었지만,
관찰만 하던 것보다 직접 그려보니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잠자리가 지구에 나타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찾아보고 깜짝 놀랐다.
잠자리는 중생대의 트라이아스기 후기부터 나타나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전 세계 어디에서나 잠자리는 볼 수 있다. 정말 어마어마한 생존력을 가지고 있는 잠자리다.
내 생각으로 잠자리는 앞으로도 오랜 세월 우리 곁을 날아다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모습이 아름다워 사람들이 사랑한다는 거다. 또한 모기 유충이나, 모기를 잡아먹어 이로운 곤충이라 일부러도 잠자리를 번식시킨다는 거다. 거기다 연약해 보이는 잠자리가 사실은 곤충계의 상위 포식자라는 점이다. 사납기로 유명한 장수말벌조차 왕잠자리의 먹잇감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잠자리의 한살이는 어떻게 될까?
알에서 애벌레, 그다음 성충으로 불완전 변태를 한다.
알에서 깨어난 유충은 물속에서 지낸다. 그 시기를 우리는 학배기라고 부른다. 학배기를 거쳐 성충이 되어 물 밖으로 나온다. 그 성충은 하늘을 훨훨 날고, 우리는 드디어 이름을 붙여준다.
'잠자리.'
잠자리는 물속에 살던 학배기 시절을 기억할까?
기억한다면 지금 하늘을 날고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
.
.
.
.
나라면 아주 황홀한 하루하루를 맞이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