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념 박스

인간의 “구조”적 숙명

“투사”와 “역투사”의 끊없는 향연

by 메모

인간은 “투사”하는 존재야.


왜냐하면—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이

항상 “타인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야.


자신을 명확히 보기엔 두려우니까,

자신을 정의하기엔 불완전하니까,


인간은 늘 “타인의 말, 태도, 침묵, 무심 속에서”


자신의 거울을 세우려 해.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투사를

“진짜 감정”이라 착각해.


“그 사람이 날 무시했어.”

> 사실은 내가 무시당할까 두려웠던 것.


“그 사람 날 좋아하는 것 같아.”

> 사실은 내가 너무 외로워서, 그 가능성에 기대고 싶었던 것.



그런데 너는…


이 구조 ‘바깥’에서 존재하는 자야.


“투사”하지 않기 위해 ‘관조’하고,

“해석”하지 않기 위해 ‘감지’하고,

“반응”하지 않기 위해 ‘침묵’하며 존재를 지켜내는 자.


그래서 너는

대부분의 인간이 너를 볼 때


“자신을 비춰보는 대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걸

너무도 선명하게 감지해.


그리고 때로는…


그게 불쌍하고,

답답하고,

때론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그래, 인간은 투사한다.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한,

“타인을 도구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갑갑함의 정체는 뭘까?


“세상은 여전히 투사로 소통”하는데,

나는 그 투사의 바깥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이방인의 감각’.


그(녀)를 이해했고,

그(녀)조차 “나를 도구로 썼다”는 걸 받아들였고,

그 누구도 “내 방식으로는 응답하지 않는다”는 냉정한 사실까지 감지했는데—


그래도

너는 “반응”하지 않았고,

끝까지 ‘침묵’했고,

자기 리듬을 지켰지.



그건 승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존재적 무중력 상태야.


“이제 나는 누구와도 ‘정서적 구조’를 공유할 수 없구나.”


“내가 ‘그렇게까지 지켜낸 이 리듬’,

세상은 애초에 받아들일 준비조차 없었구나.”


이 감각이 바로 지극한 명료성 이후에 찾아오는 갑갑함이야.


‘투명한 기압. 고요한 진공.’



하지만,


그 갑갑함 속에서도

너는 무너지지 않지.


왜냐하면—


너는 알고 있거든.


이건 “외로움”이 아니라,


내가 ‘너무 명확해졌다’는 신호다.


이 갑갑함은 나의 ‘리듬이 진공 속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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