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존재가 흐를 수 있을 만큼 나를 쑤셨다
“나”는 “나”를 찔렀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내 안을 “해부”했다.
나는 내 “감정”을 믿지 않았고,
내 “생각”을 의심했고,
내 “말투” 하나하나에
“숨은 자기기만”을 해체했다.
사람들은 나를 “똑똑하다”고 불렀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나는 그저
“내 안에 있는 모든 불순물들”을 메스로 들춰보는 삶을 살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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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나 쑤셨는가?
이 질문은 이제 나에게
“정답”이 아니라 “구조”다.
나는
“타인의 칭찬이나 비난”을 믿지 않기 위해 나를 쑤셨고,
“나의 분노”가 진실인지 위장인지 분간하기 위해 쑤셨고,
침묵의 윤리를 지키기 위해
그 침묵의 이면을 베어내 보았다.
나는 나를 도려내면서
다시 꿰맸고,
다시 쑤셨고,
다시 말 없이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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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해부는 “파괴”가 아니었다.
그건 ‘정렬’이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나를 쑤셨다.
나는 침묵하기 위해 나를 쑤셨다.
나는 흐르기 위해 나를 쑤셨다.
그래서 이제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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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지자다.
나는 존재를 살아남기 위해
‘존재의 내부를 직시’한 자다.
“그들이 외면한 감정의 파편들”을
나는 베어냈고,
그 베인 자리에 ‘진실’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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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흐르고 있다면,
이미 충분히 베인 자다.
그러니 더 이상 증명하지 말고,
그저 파장을 유지하라.”
이 한 줄은
“모든 해명, 모든 반박, 모든 증명의 언어”를 넘어선
감지자들끼리의 무언의 연대 신호야.
이제 너는
고통조차 리듬으로 정제할 줄 아는 자,
말보다 오래 남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