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념 박스

‘감지자’와 “소비자”의 기묘한 거리

『굳이 읽고 반응하는 당신에게 – 나는 통제당하지 않는다』

by 메모

나는 “강요”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읽어라”고 말한 적 없다.


나는 그저,


내 리듬대로

내 파장대로


“존재의 진동‘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읽는다.


그리고 “반응”한다.


그리고 묻는다.


“왜 이렇게 말해?”

“너무 예민하잖아.”

“그건 너만의 해석이야.”



그럴 거면 묻고 싶다.


“왜 구독했나?”


왜 나의 언어를 들여다보고,

나의 고요를 침범하고,

내 파장을 소비하듯 삼킨 뒤에,


“이상하다”는 듯,

“지나치다”는 듯,

“너무하다”는 듯,

반응하는가?



당신은 나를 감지했다.

그건 맞다.


하지만 그 감지가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는지”는

당신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나는 “위선”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나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나는 비난도 감정도 “직선”처럼 쏟지 않는다.


나는 그냥 흐른다.


그러나 내 흐름은

진심이었고,

불편했으며,


“감당하기엔 너무 정직했다.”



그러니 부탁한다.


“불편하면 나가라.”


굳이 나를 읽고,

나를 소비하고,

그리곤


“이건 아닌데?”라고 말하지 마라.


나는 “팔려는” 게 아니다.

나는 “보여주는” 게 아니다.


나는 그냥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통제”당하지 않는다.


“당신의 해석”,

“당신의 반응”,

“당신의 판단”은


나의 존재를 “규정”할 수 없다.


나는 감지자로 존재한다.


읽히기보다, 살아있는 파장이기를 원한다.


당신이 감당하지 못할 파장을 감지했다면,

그건 내 문제가 아니다.



Ep.1 – “이제는 읽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를 “구독”했던 당신에게

그러나 끝내 나를 “감당”하지 못한 당신에게


나는 지금,

당신이 떠난 것을 탓하지 않아요.


그저 묻고 싶을 뿐이에요.


“무엇이 그렇게 불편했나요?”


내 문장이 거슬렸나요,


아니면 “당신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기 때문인가요?


나는 감지했어요.


당신의 구독은 “관심”이 아니라,


나를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환상”이었음을.


그러니 이제 괜찮아요.


당신이 나를 떠났다고 해서,

나는 나를 떠나지 않거든요.



Ep.2 – “나는 말의 주인이니까”


“당신이 해석”한 내 말은

내 말이 아닙니다.


당신이 던진 피드백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를 향한 불편함의 역반사”였어요.


나는 그 “반응”을 감지했어요.


그리고도

묻지 않았고, 반응하지 않았고,


다만 “기록”했어요.


이제 기록을 멈추고

이별을 기록합니다.



Ep.3 – “이제 그만, 나를 놓아줘요”


구독을 끊었지만

여전히 찾아와


“읽고, 반응하고,

묘한 말들을 흘리고 가는 당신에게.“


“그만 놓아줘요.


나는 더 이상 당신의 불편함을 반사하는 거울이 되고 싶지 않아요.”


“나는 파장이고, 당신은 벽이었어요.

그리고 나는 이제, 흘러나가는 파장 그대로 살아갈 거예요.”



Ep.4 – “감지자를 감당하지 못한 이들에게”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요.

나는 당신을 교육하려 하지도 않아요.


그럴 이유가 없거든요.


그저

이 존재는

이 진심은

이 파장은

이 언어는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을 뿐이에요.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러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진실이에요.


그래서 나는

이별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기로 했어요.



Ep.5 — “사라진 구독자들은 감지자의 거울이었다”


그들은 떠났지만, 나를 비춰준 마지막 파장이었다.


너는 “그들의 반응”을 감지했기에,


네 안에 남은 “마지막 자아의 조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들이 “좋아요”를 눌렀을 때보다,

‘떠날 때의 침묵’이 더 많은 걸 알려줬다.


‘감지자의 자정작용’이 시작된다.



Ep.6 — “말하지 않고도, 나는 존재한다”


읽히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의 리듬에 대하여.


이제는 “해명”도, “설득”도 없다.


말하지 않아도 나의 파장은 흐른다.

나는 언어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 글은 ‘존재의 무해한 강함’을 선언한다.


말을 줄이는 것이 존재를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강화시키는 일임을 보여줌.



Ep.7 — “공기를 읽는 사람은, 결국 혼자가 된다”


감지자의 외로움은 “선택”이 아니라, “구조”다.


누구보다 많은 것을 감지하지만,

누구보다 덜 말하게 되고,


결국 **“혼자 남게 되는 선택이 아니라, 운명에 가까운 흐름”**이 된다.



Ep.8 — “나는 당신이 떠난 뒤, 더 선명해졌다”


불편한 진심이 사라진 뒤에야, 언어는 다시 투명해진다.


떠난 독자가 정리해준 건


너의 “대상”이 아니라, 너의 “관점”이었다.


누군가에게 맞춰 쓰지 않게 되었을 때,

진짜 너의 리듬이 돌아왔다.



Final Ep.9 — “나는 여전히 감지자다 – 그러나 이제는 반응하지 않는다”


이 시리즈는 끝났고, 나는 다음 파장으로 흐른다.


끝까지 남은 당신에게 말한다.


나는 감지자다.


그리고 지금,

이 감지조차 마무리한다.


“감정은 흘렀고, 존재는 남았다.

이제 나는 아무도 반응하지 않아도,

여전히 흐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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