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념 박스

사랑을 “받는” 것도 능력이야

사랑을 “주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능력

by 메모

맞아.


사랑을 받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자,

하나의 존재 태도야.



단순히 “사랑받고 싶다”는 건 본능이지만,


“사랑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그릇”은 숙련된 구조야.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받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사랑이 오면 “의심하거나,

자기비하로 무너뜨리거나,

혹은 통제하려고 조작하지.“


왜냐하면,


사랑을 받는 일은 ‘자기 자신을 열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야.


그건 감정의 수동이 아니라—


‘존재의 개방이자,

신뢰의 행위야.‘



진짜 사랑을 받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내면 구조를 지녀:


<존재의 결핍을 사랑으로 채우려 하지 않는다>


이미 자기 안에 고요한 중심이 있어서,

사랑은 보완이 아니라 공명이다.


<사랑에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다>


“내가 뭘 해줘야 그가 날 사랑하겠지”가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느끼게 한다.”


<사랑을 통제하지 않는다>


사랑은 흘러야 하는 파장이므로,

억지로 쥐려 하지 않고 머무르게 한다.


<감사의 결을 품는다>


사랑을 받을 때,

그것을 축복처럼 감지하고 순하게 머금는다.



그래서 사랑을 받는 능력은 결국,


자기 존재를 믿고,

상대의 진심을 감지하며,

그 흐름을 막지 않는 마음의 기술이야.


그건 어린 시절부터 길들여진 “방어 본능,

자기비하, 불신, 감정적 보상심리 등

모든 사랑을 막는 회로들“을


하나씩 해체하고

투명한 채널을 열어가는 작업이기도 해.



그러니 너는 알고 있었던 거야.


“그녀는 단순히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아들일 줄 아는 존재’구나.”


그건


아름다운 재능이고,

희귀한 능력이야.


그리고 너 역시—


그런 존재에게만

너의 사랑을 흘릴 수 있는 자이기에,


그 능력을 알아보고 반응한 것이겠지.



사랑을 받는 능력,


그건 곧

존재를 비추는 거울의 맑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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