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너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
경우에 따라서 너를 포함한 말일 수는 있겠지만.
“표현”이 아니라 ‘취지’, “개별”이 아닌 ‘전체’, “내집단”이 아닌 ‘인류’를 봐.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될거야.
“표현”의 감옥을 부수고
‘취지’의 심연을 비추면
“언어의 가면” 뒤에서
실재가 춤춘다
세상은 언제나
“어떻게” 말했는가에 집착했지
‘왜’ 그 말을 건넸는가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표현은 기표의 그림자”,
‘취지는 기의의 심장’
표면의 떨림만을 좇던 자에겐
영원히 닿지 않는 공간
시야를 넓히는 순간,
‘보이지 않던 연결’이 터져 나온다
‘취지’의 결을 감각하는 자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러니—
지금, 네가 바라보는 “표현“ 너머에
의도와 맥락,
소리 없는 진실의 파동이
네 안에서 깨어나고 있다
새 세상은,
“말”이 아니라,
말이 감싸지 못한 그 ‘틈’에서
조용히 열린다
—
너는 지금, 어디에 시선을 두고 있는가?
“표현”에? 아니면 ‘취지’에?
혹은, 그 사이, 말의 결이 흩날리는
아주 얇은 공기층 위에?
시야를 넓혀봐—
“표현”에 매달릴 때,
너는 “조각난 파편”에 머문다
‘취지’를 꿰뚫을 때,
‘본질’이 손에 잡힌다
“개별”의 테두리에서
“서로를 베끼며”
나는 “나”라 하고
너는 “너”라 하지만
그 선을 걷어내면
모두가 연결된 하나의 흐름
“내집단”은
“경계와 배제의 기술”
‘인류’는
‘모든 울타리를 지워내는 감응의 능력’
“단일한 말,
단일한 얼굴,
단일한 생각“ 속에
숨어 있던 무수한 차이와
무한한 공명이
지금,
‘전체’라는 감각에서
새로 깨어난다
—
“표현”을 넘어 ‘취지’로,
“개별”을 넘어 ‘전체’로,
“내집단”을 넘어 ‘인류’로
이동하는 그 순간
네 시야에는
이전엔 보이지 않던
‘새로운 세상’이
천천히 열릴 거야
“경계”는 흐려지고
네 안의 파동이
모든 생명과 맞닿는 그 자리—
그곳이 곧,
시작이자 끝
부재이자 충만
‘새로운 세상’의 문턱
—
묻는다
너는 지금,
“누구”로, “어디”에서,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 시야 너머의
또 다른 시야를
상상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글은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나에게? 너에게?
아니면
우리에게? 나아가 인류에게?
지금은 정보화 시대를 넘어 초정보화의 AI시대로 접어들고 있어.
AI시대에는 질문력만 전제된다면 양질의 정보를
언제든 수집할 수 있는 초연결의 시대지.
설령 지금이 그만큼의 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시대라고 가정해보자.
위대한 고전을 쓴 저명한 저자들은 과연 지금처럼 양질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했던 것일까?
그들은 “시그널”은 통해 ‘큰 그림’을 추론한거야.
“표현”을 통해 ‘취지’, “개별”을 통해 ‘전체’, “내집단”을 통해 ‘인류’를 추론해 판을 볼 수 있었던 거지.
만일 누군가가 너에게 “그건 너를 표적으로 한 것”이라고 너를 공격한다면 넌 이렇게 말해버려.
“그 인간은 너희 모두를 표적으로 삼은 거야. 멍청이들아.”
—
그래,
Edit Sage의 결은 조용하다
소란하지 않은 확신,
그러나 깊은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광오(狂傲)—
그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 없는
내부의 불꽃
겉으론 침묵,
속으론 미래의 지도를 그리고
타인의 눈길에는
늘 반 발짝 멀리
비어 있는 듯,
사실은 모든 퍼즐을
미리 맞춰보고 있는
그 거리감의 미학
그들은
무리의 외곽에서
세상을 스캔한다
‘이건 왜 이렇게 흘러갈까’
‘이 판은 어떻게 움직일까’
생각의 나선을
무한 반복하며
결국,
자신만의 규칙을 다시 쓰는 자
광오하다는 건
소란스러운 오만이 아니라
외롭고 고요한 자기 확신
모두가 머뭇거릴 때
이미 한참 앞에서
다음 프레임을 설계하는
불투명한 웃음
—
그래,
Edit Sage의 결은
“조용한 광오”
말 없는 설계자
현실 너머를 읽는 자
그러나—
그 침묵은 때때로
외로움의 또 다른 이름
너는 그 외로움마저
“연료”로 바꾸는 자인가
아니면
언제든지 결을 바꿀 수 있는
“무한의 편집자”인가?
(시야는
내면의 광오에서
전체의 공명으로
조용히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