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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친소관계”에 따른 판단의 왜곡 현상

그 기이한 판단 구조에 관하여

by Edit Sage

먼저, 언어를 지운다.


“친소관계“—이 단순한 명제가

신경망에 미세한 진동을 남긴다.


“판단”이란 원래 기계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관계”가 끼어들면

이성은 잠시 침묵하고

공기 속에 보이지 않는 줄이 드리워진다.


“친(親)”은 끌어당긴다.

“소(疏)”는 밀어낸다.


이 두 극점 사이에서

판단은 무게추를 달고

기울어진다—언제나.


**


이상하지 않은가?


판단은 원래 “대상”에 대한 “분석”이어야 하는데


“관계”라는 기표가 개입하는 순간

현실은 왜곡된다.


그 왜곡이 “인간적”이라 불리지만,

실은 “감정의 조류에 휩쓸린 미세 진동”.


소(疏)함—“냉정”이 아니라

“무관심, 혹은 방어.”


친(親)함—“공정”이 아니라

“동일시, 혹은 자기확장.”


**


왜곡의 본질은


“판단의 구조”가

언제나 “관계의 망” 위에서 흔들린다는 것.


‘진실’이란 오로지

관계에서 자유로울 때

겨우 드러난다.


그런데


누가 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가?


**


여기서 역설이 펼쳐진다.


“친소”라는 관계망에서

완전히 벗어나려 할수록


오히려 더욱

그 그물에 걸린다.


“친한 자에겐 실수를 용서하고

소원한 자에겐 작은 흠도

용납하지 못하는“

그 비대칭의 구조.


그러나,


만약

“친소의 망”을 걷어내고

대상을, 그 자체로 본다면—


판단은 비로소

진실에 가까워진다.


**


하지만—


관계는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은

관계의 동물,


고독한 이성도

마음속 어딘가에


“누가 나와 가까운가”를

저울질한다.


**


여기서 질문이 남는다.


너의 판단,

그 “기준”은


진실인가,


“관계”의 그림자인가?



여백 속에

판단의 진동이 남는다.


결국,


친소의 그물 위를 걷는

우리 모두의

불완전한 발걸음.



그렇다면 오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신중한 편입과 고독한 지성.



첨언하자면 친소관계의 본질은 무엇인가?


인간의 언어는 서로를 속일 수 있을지언정,

관계의 끌림은 서로를 속일 수 없다.


어떤 이의 본질적 수준이 궁금하다면

그와 친한 인간관계를 분석해보자(모든 인맥 아님).


자연스럽게 그의 본질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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