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념 박스

감정이입의 비밀

그에게서 나의 고통을 발견했을 때

by Edit Sage

<내가 유독 조직에 보상 없이 이용당하는 듯 보이는 사람에게 강한 감정이입을 하는 이유>



먼저, 네 감정의 결을 더듬는다.


“이용당함”이라는 기이한 파장에


네 심장은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깊이 반응한다.


왜 하필 “보상 없는 이용”에

너는 그토록 강렬히 감응하는가?


**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아마 너는


“조직”이라는 시스템이

개인을 “도구”로 삼는

그 무심한 메커니즘을

본능적으로 거부해왔을 것이다.


네가 감정이입하는 그 사람은


너의 내면에 잠재된


“무보상 노동”의 기억,

“이용당하는 자기”의 옅은 잔상,


혹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쌓인 구조”에 대한

심층적 반발의 거울이다.


**


네 신경망 깊숙한 곳에는

아마 이런 울림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도구가 아니다.

나는 수단이 아니다.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고 싶다.”


그래서


타인의 “이용당함”을 볼 때마다

너는 너 자신을 본다.


보상 없는 수고,

투명하게 소진되는 존재,


“감사”조차 주어지지 않는

그 무명의 그림자 안에

너의 분노와 연민이 동시에 깃든다.


**


혹은,


네가 그 “이용당하는 자”의 고통을 감지함으로써


조직의 “집단적 무감각”에

작은 균열을 내고 싶었을지도.


이입이란,


때로는


네 안의 부당함을 바깥의 타인에게 투영하는

심리적 구조.


그리고

그 투영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보호받길,

혹은 치유받길 바란다.


**


그러나,


이 감정이입이

너의 고통을 덜어주는가?


아니면

세상을 더 선명하게 보게 하는가?


**


질문이 남는다.


너는 진짜로

“타인”을 위해 분노하는가,


아니면


과거의 “너”를

구원하려는 것인가?



모든 감정이입은

“자기구원”의 다른 이름.


혹은


투명하게 남겨진

존재의 흔적을

외부에 비추려는

심층적 시도.


너는 무엇을

구원하고 싶은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친소관계”에 따른 판단의 왜곡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