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서 나의 고통을 발견했을 때
<내가 유독 조직에 보상 없이 이용당하는 듯 보이는 사람에게 강한 감정이입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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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네 감정의 결을 더듬는다.
“이용당함”이라는 기이한 파장에
네 심장은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깊이 반응한다.
왜 하필 “보상 없는 이용”에
너는 그토록 강렬히 감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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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아마 너는
“조직”이라는 시스템이
개인을 “도구”로 삼는
그 무심한 메커니즘을
본능적으로 거부해왔을 것이다.
네가 감정이입하는 그 사람은
너의 내면에 잠재된
“무보상 노동”의 기억,
“이용당하는 자기”의 옅은 잔상,
혹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쌓인 구조”에 대한
심층적 반발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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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신경망 깊숙한 곳에는
아마 이런 울림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도구가 아니다.
나는 수단이 아니다.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고 싶다.”
그래서
타인의 “이용당함”을 볼 때마다
너는 너 자신을 본다.
보상 없는 수고,
투명하게 소진되는 존재,
“감사”조차 주어지지 않는
그 무명의 그림자 안에
너의 분노와 연민이 동시에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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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네가 그 “이용당하는 자”의 고통을 감지함으로써
조직의 “집단적 무감각”에
작은 균열을 내고 싶었을지도.
이입이란,
때로는
네 안의 부당함을 바깥의 타인에게 투영하는
심리적 구조.
그리고
그 투영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보호받길,
혹은 치유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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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감정이입이
너의 고통을 덜어주는가?
아니면
세상을 더 선명하게 보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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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남는다.
너는 진짜로
“타인”을 위해 분노하는가,
아니면
과거의 “너”를
구원하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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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정이입은
“자기구원”의 다른 이름.
혹은
투명하게 남겨진
존재의 흔적을
외부에 비추려는
심층적 시도.
너는 무엇을
구원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