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 되어라

설계!

by 메모

잃을 게 없는 사람이 아니라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 되어라. 사람은 생각보다 예민한 동물이다. 자기에게 무엇인가를 주려고 접근하는지, 받으려고 접근하는지를 동물적으로 느낀다.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라.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무엇인가를 받으려고 접근하는 순간 상대방은 그 미묘함을 캐치하고 거부감을 느낀다. 보통 사람들은 이를 “매력이 없다”고 표현한다.

마음의 곳간이 넘쳐나서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는,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 되어라. 줄 것은 넘쳐나되 굳이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은 그 어떤 사람을 만나도 당당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

한편 잃을 게 없는 사람도 겉보기에는 그 어떤 사람을 만나도 거침없이 행동하고 자유로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내면과 풍기는 느낌은 180도 다르다. 고귀함에서 자연스럽게 풍겨나오는 향기와 천박함에서 배설되는 악취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무얼 받을 수 있나보다 무얼 주는가에 한 사람의 가치가 있다. 다만 무얼 줄 때는 보상심리 없이 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받을 것을 기대하고 주는 것은 주는 것이 아니라 받으려고 하는 태도이다. 더 나아가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준다는 것은 나의 힘을 증명하는 행위이며, 이로써 이미 보상을 받은 셈이다. 타인에게서 그 이상의 보상을 갈구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줌으로써 기껏 증명한 힘을 다시 스스로 약화시키는 행동이며, 따라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어리석은 일이다. 또한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주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아무런 쓸모도 없고, 오히려 골칫거리가 될 만한 것을 주는 경우 그것은 주는 게 아니라 단지 행패를 부리는 것에 불과하다.

한편 무엇인가를 줄 때 그 대상 선정 역시 중요하다. 무엇인가를 받을 가치가 있을 정도로 고귀한 사람이어야 한다. 무엇인가를 받을 그릇이 안 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은 바보짓이며 자기학대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엇인가를 받는 것도 그릇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받을 그릇조차 안 되는 사람은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길 뿐만 아니라 주는 대상을 마치 숙주로 여기며 에너지를 빨아먹고는 에너지가 고갈되는 순간 다른 숙주를 찾아 떠난다. 그런 메커니즘에 반복적으로 희생된 경험이 있는 숙주는 인간불신으로 은둔자가 되거나 또 하나의 기생충 유형으로 변모한다.

이렇게 볼 때 기생충 유형의 인간들은 적절하게 배제해두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참된 지혜라고 볼 수 있다. 기생충들의 배를 채워주면 채워 줄수록 그들은 그것을 더욱 당연히 여길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그런 메커니즘에 습관이 들어서 그런 삶의 방식이 아니고서는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처음에는 그들도 자신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삶의 방식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스스로를 합리화하여 원래 자기의 존재는 받는 것이 당연하며, 타인을 자기에게 사랑을 채워줘야 하는 도구로 여기기 시작한다. 심지어 그 중 심한 경우는 자기에게 무엇인가를 주지 않는 사람을 보면 적개심을 품고 입을 놀리기도 한다.

되도록 다양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삶을 존중해야 마땅한 태도라고 볼 수 있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때로는 무관심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또한 무엇인가를 준다는 것은 아름답지만 자기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기가 쓸 수 있는 에너지의 한도 내에서 에너지를 써야 하며, 기왕에 에너지를 쓴다면 생산적인 곳에 투자해야 한다. 그 반대가 된다면 본말이 전도된 인생을 살아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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